샬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비전 멘토링 컬럼, 오늘은 [십자가로 시작된 새 가족의 비전]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시면서 세 번째로 하신 말씀은 요한복음 19장 26-27 절의 다음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19:26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19:27보라 네 어머니라
이 말씀에서 여자여 라고 부르신 부분에 대하여는 94회 칼럼에서도 다룬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머니 마리아를 여자라고 부르신 것은 창세기 3장 15절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처내고 있는 현장에 있다는 것과 그 여자가 마리아이고, 그 여자의 그 후손이 자신임을 선포하시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하여 여자라고 부르셨다는 것을 이미 살폈습니다. 실로 세 번째 말씀에서 드러나는 여자를 통한 비밀은 엄청납니다. 그런데 세 번째 말씀의 비밀은 거기에서 끝이 아닙니다.
이 세 번째 말씀의 정황은 요한복음 19:25에서 다음과 같이 살필 수 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즉, 예수님 십자가 옆에 있던 어머니 마리아에게 요한을 아들로, 요한에게 마리아를 어머니로 선포하십니다. 결과는 새로운 가족의 탄생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자신이 죽어가고 있는 십자가에서 어머니 마리아를 제자 요한에게 맡기는 것이 마리아에게 다른 자식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 55-56절은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와 누이들이 있다고 알려줍니다. 즉, 마리아에게는 예수님 외에도 4명의 아들들이 있었고 복수형으로 표현된 누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많은 자녀들이 있는 중에도 예수님은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 마리아를 맡기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핵심은 십자가에 있습니다. 직계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어머니 마리아가 십자가로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 중에 유일하게 요한이 십자가 앞으로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십자가 현자에 나온 육적 가족과 영적 가족의 대표가 됩니다. 당시 십자가는 가문의 수치의 상징이었고 두려움의 상징이었습니다. 괜히 그 십자가 주변에 간다는 것은 얼굴을 팔리는 일이고 혹시 잡혀서 험한 꼴을 당할 수 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무릅쓴 어머니와 제자 요한을 모자지간으로 새로운 관계 설정을 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이러한 새 가족화는 이전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누가 내 어머니와 동생들이냐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마태복음 12:46-50, 마가복음 3:31-35, 누가복음 8:19-21)라고 말씀하신 것을 완성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때까지 예수님의 형제와 자매들은 복음을 위하여 헌신되지 않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복음에 확신이 없었습니다. 오죽하면 성경은 예수님의 가족에 대하여 “예수의 친속들이 듣고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마가복음 3:21)고 알려줍니다.
또한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을 믿지도 않았고 잘난척하는 사람 정도로 여겼습니다.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요한복음 7:4-5). 이와 같이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의 육적 가족의 차원에서 인간적으로 걱정하였을 뿐, 예수님의 영적 사역을 이해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아무리 친 가족이라도 영적인 태어남은 전혀 다른 차원이기 때문이고 영적으로 태어남은 새로운 가족으로의 탄생을 의미합니다.
거듭남의 비밀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이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때 거듭을 뜻하는 그리스어 아노쎈 (a[nwqen)은 다시, 새롭게라는 뜻도 있지만, 위로부터라는 뜻이 또한 강하다 (요한복음 3:3). 그러므로 그 거듭남은 육체적 태어남 이후, 다시 위로부터의 영적인 태어남을 의미한다. 그리고 영적 거듭남에 따른 가족이 바로 이 새 가족인 것이다. 예수님은 천국에서 함께 살게 될 가족 체계를 이 땅에서부터 살도록 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새로운 관계를 설정해 주신 이후에 제자 요한은 마리아를 자기 집으로 모시고 가서 수종을 들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육적 가족의 변화
그렇다면 육적 가족은 무의미하고 다 버려야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우리는 예수님의 육적 가족들에게 배워야합니다. 예수님의 믿지 않았던 형제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에 그들은 변합니다.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님의 형제들은 십자가 사건 이후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만났고,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의 남녀 제자들과 함께 120명이 다락방에서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고 (사도행전 1:14) 그런 후 그들은 모두 성령을 받았습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마가의 다락 방에서 제자들과 성령을 같이 받았으며 제자들과 더불어 초대 교회를 세우는데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을 것입니다. 그의 아들 중 두 명, 야고보와 유다는 중요한 사도들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사도들의 어머니로써 마리아는 핍박받던 초대 교회 당시에 제자들과 모든 성도들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고통받는 제자들과 성도들을 위하여 어머니의 심정으로 위로하고 기도하여 주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순교자들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함께 울면서 마리아에게 기도부탁을 하던 아름다운 전통이 있었을 것이다. 마리아에 대한 마지막 성경의 언급은 성령을 받으러 다락방에 자녀들과 같이 들어간 것입니다. 그녀는 이름 없이 교회를 섬겼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형제 중 야고보와 유다는 훗날 다른 사도와 같이 예루살렘 교회의 주축이 되었습니다. 야고보서를 쓴 야고보는 바로 이 예수님의 형제입니다. 갈라디아 1장 19절에서는 바울 사도가 예루살렘에 갔을 때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고 말함으로 예수님의 형제인 야고보가 사도급의 사람들 사이에서 중요한 사역을 감당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머니 마리아를 여자라고 부르시면서 십자가에 선 제자를 아들로 삼으라고 말씀하신 것의 또 다른 의미는 모든 여자들에게 중요한 메시지가 됩니다. 십자가 앞에선 모든 여자들은 십자가 앞에선 다음 세대들을 모성애를 가지고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 앞에선 젊은 이들은 십자가 앞에선 어머니뻘 되시는 분들을 예수님 안에서 영적 어머니로 모시며 축복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요한계시록 12장 17절의 다음 말씀이 응한다는 것입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십자가 앞에선 어머니뻘 되는 여자들은 십자가 앞에선 자식뻘되는 세대를 기도로 말씀과 물질과 사랑으로 돌보아 용과 더불어 싸우는 비저너리 용사들로 키우라는 것입니다.
전승에 의하면 십자가 앞에 섰던 막달라 마리아는 당시 사도급에 해당하는 지혜와 권세로 초대 교회에서 사역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예수님 부활을 처음 그리고 가장 강렬하게 체험한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사역을 하면서 수 많은 젊은 세대를 일으키고 핍박 많았을 시대에 영적 어머니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비전 멘토링 칼럼, 지금까지 [십자가로 시작된 새 가족의 새 비전]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살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적 가족의 대표와 영적 가족의 대표로 십자가 앞에선 마리아와 요한을 어머니와 아들로 새 관계를 설정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들은 즉시 순종하여 요한이 마리아를 평생 모십니다. 그리고 그들은 함께 오늘날 터키의 에베소 지역에 최대 교회를 개척하고 섬깁니다.
오늘날도 교회에서 믿음의 어머니들께서 믿음의 젊은 세대를 영적 자녀 로 입양하고 비전을 발견케하고, 비전 멘토로 다음 세대를 양육하는 일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다음 세대가 이렇게 허무하게 허물어지는 일을 막게 될 것입니다. 우선 내 육적 가족을 거듭나게 하여 육적 가족이며 동시에 영적 가족화 해야합니다. 그리고 교회에 그리고 비전의 직장에 있는 다음 세대를 입양하여 영적 가족화 하여야 합니다. 이럴때 마리아와 요한 팀이 강렬하게 사역했던 열매 처럼 귀한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그런 축복을 모두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샬롬 승리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