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멘토링 칼럼 195

196. 모세의 비전 완성법_출애굽 현장 보고

샬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비전 멘토링 칼럼, 오늘은 [모세의 비전 완성법 출애굽 현장보고]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저는 지금 사우디 아라비아에 와 있고 모세의 출애굽 여정을 순례하고 있습니다. 일정이 매우 피곤하고 통신 수단도 열악하지만 사랑하고 존경하는 비전 멘토링 칼럼 애청자들께 3500여년전 출애굽 여정 현장 답사와 더불어 출애굽기를 살피면서 받은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2월 13일 겟세마네 신학교 윤사무엘 총장님과 양시열 대표님을 필두로한 출애굽 현장 순례팀과 함께 한국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캬르타고 도하를 거쳐 이집트 카이로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카이로 근교 도조지역에서는 원시 형태의 피라미드를 볼 수 있었습니다.

원시 형태 피라미드엔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 원시 피라미드는 길이 80센티, 넓이 40센티 정도의 잘 다듬어 지지 않은 돌을 흙과 같이 쌓은 돌 언덕이었습니다. 두번째 원시 형태는 바벨탑처럼 불에 구운 흙 벽돌로 촘촘히 쌓은 지구라트 다음 단계인 굴절 피라미드였습니다.

이곳에서는 신전도 같이 볼 수 있었는데 신전에는 코브라 장식이 어김없이 등장하였습니다. 또한 15미터 정도 깊이로 지어진 곡식 창고도 볼 수 있었습니다.

기자 지역에서는 우리가 평소에 사진으로 가장 익숙하게 보는 웅장하고 정교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볼 수 있었고, 카이로에서는 박물관을 방문하여 이집트 문명의 모습을 더 깊이 있게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들을 본 소감은 다음과 같습니다. 눈으로 보기에는 웅장한 문명이었지만 내면으로 들어가 보면 애굽 평민들과 노예들이 몇 명의 바로 왕족을 위하여 수 백년에 걸쳐서 지었을 죽은 문명의 잔혹함이 있었고, 그들을 지배한 뱀을 상징으로 내세운 사탄의 영적 미혹과 우상 숭배를 불행한 역사였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 내면을 지배자들의 우매한 잔혹함과 사탄의 미혹을 모른채 관광하는 이들이 너무나 불쌍했습니다.

수요일에는 이집트 카이로를 떠나 수에즈 운하 지하를 관통하는 해저 터널을 통하여 시나이 반도로 들어갔습니다. 이전 시내산으로 잘못 알려진 곳으로 가는 길을 따라 시나이 반도를 통과하였는데 너무나 놀랍게도 용암 분출로 형성된 돌 산들이 중부 시나이 반도를 꽉채우고 있었습니다. 마치 돌로 만들어진 캘리포니아 죠수아 트리 국립공원을 보는듯 했으나 돌산의 규모가 더 크고, 더 가파르고, 선인장하나 자랄 수 없는 순수 돌덩이 산들이었습니다.

떨기 나무의 저자 김승학 장로님을 통하여 새롭게 밝혀진 출애굽 홍해는 기존의 성 카트린느 수도원을 지나 삼각형 모양의 시나이 반도 오른편의 작은 도시 누에이바였습니다. 이곳은 약 200만이 모이기에 적절한 곳이었고 애굽 전차 바퀴가 발견되는 곳이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잠수함을 타고 그것을 직접 목격하려 하였으나 코로나 여파로 그런 산업 시설이 모두 철수한 상태여서 아쉬웠습니다.

이제 출애굽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다음은 출애굽기 4장, 13장, 14장을 묵상하고 감동 받은 것을 정돈한 시편 두개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모세는 출애굽기 4장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4: 10)

 

주여 , 하오니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4: 13)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무능력함을 인식하고 당황해 하는 모세에게 힘을 주시고

능히 감당케 세우십니다.

 

다음은 출애굽기 13장 묵상입니다.

유월절 : 소생하던 봄, 소멸되던 밤

1

후일에 아들이 네게 묻기를

이것이 어찌 됨이냐 하거든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종이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실쌔

때에 바로가 완악하여 우리를 보내지 아니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모든 것은 사람의 장자로부터 가축의

처음 것까지 죽이셨으므로,

 

태에서 처음 모든 수컷들은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려서

 

아들 중에 모든 처음 자를 대속하리니

이것이 손의 기호와 미간의 표가 되리라

 

이는 여호와께서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할지니라, 셀라.

출애굽기 13:14 -16

 

2

때는 자연의 모든 것이 소생하던 봄.

때는 애굽의 모든 것이 소멸되던 밤.

 

급하게 허리띠를 동이고 신발을 싣는다.

급하게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다.

 

급하게 어린양을 잡아 불에 굽는다.

급하게 소금과 물로만 빵을 굽는다.

 

그가 그 밤에 애굽의 초태생을 심판 하셨도다.

그가 그 봄에 애굽의 잡신들을 심판 하셨도다.

  

그가 애굽의 모든 초태생을 제물로 삼으셔서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들을 대속 하셨느니라.

 

야곱이 애굽을 찾은 이유는 곡식의 풍요였으나

주님이 애굽에 부른 이유는 자손의 번성이었느니라.

 

이스라엘이 애굽 거주 430년을 마치는 날에 (출 12:41)

야곱의 70명이 장정만 60만 군대로 나오니라.

 

그가 이스라엘을 불 가운데서 구하시고

물 가운데로 지나게 하사 세례 주셨느니라, 셀라.

 

 

이어지는 시편은 출애굽기 14장 27절을 묵상하고 받은 감동을 정돈한 것입니다.

주요내용: 홍해 건너기

 

홍해 건너기: 손엔, 위엔, 앞엔

dr.shalom

14:27 모세가 손을 바다 위로 내밀매 새벽이 되어 바다의 힘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슬러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1

낮엔 수직의 구름 기둥

밤엔 수직의 불 기둥

속엔 여호와의 영광

 

앞엔 막막한 홍해 바다

뒤엔 흉흉한 애굽 군대

속엔 당황한 이스라엘

 

저쪽엔 구름과 흑암

이쪽엔 빛나는 영광

바다엔 사나운 동풍

 

손엔 치켜든 지팡이

위엔 권능의 하나님

앞엔 갈라진 바닷물

 

앞엔 안전한 모래밭

옆엔 수직의 물기둥

뒤엔 창칼 든 마병들

 

 

2

걸은 60만 이스라엘은 해변에

달린 6백 애굽 마병은 물 속에

승리는 속도가 아닌 순종에

 

바다를 가른 것은 권능

생명을 지킨 것은 은혜

영원히 드릴 것은 감사

 

태초에 신은 수면을 운행했고

홍해에 그들은 물속을 걸었고

밤 호수, 그는 물 위를 걸었네.

 

불기둥이 나무 없이 불타고

물기둥이 수직으로 흐르면

그는 여호와 전능의 하나님

 

가슴이 비전으로 불타고

눈물이 감동으로 흐르면

그는 여호와 전능의 하나님

 

비전 멘토링 칼럼, 지금까지 모세의 비전 완성법_출애굽 현장보고편이라는 제목으로 출애굽 현장 답사 소감과 출애굽기 4, 13, 14장을 읽고 받은 감동을 시편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성지 순례 현장 답사를 통하여 살펴본 출애굽 현장은 참으로 거칠고 황량한 모래밭과 돌산을 지나는 길이었고, 또 깊은 수심의 홍해를 건너는 인간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여정이었습니다. 모세가 직면한 최대의 장애는 자신의 무능력이었습니다. 우리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나 감격과 감사는 이 모든 불가능을 가능케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하심입니다.

우리 삶 속에서도 우리의 무능력과 황량한 이미 생활, 황당함의 광야와 돌산, 바다가 있을지라도 우리가 믿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장애가 아니라 다만 감격의 간증거리가 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심으로 받은 비전이 없는 사람에 황량한 광야와 황당한 돌산과 바다는 여전히 황량하고 황당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멈추어서고 심각하게 주님을 믿는 믿음 위에 주님께서 주신 비전을 받고 그 실현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있는가를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출애굽 당시에 여호와에 대한 믿음만 가지고 있었던 이들은 애굽을 떠나고 모래 광야와 돌 산과 바다를 건널 엄두를 내지 못하였지만, 믿음 위에 비전을 받은 모세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것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비전의 사람은 길이 끝난 곳에서는 새 길을 주님의 은혜로 만들어 내며 비전의 미래를 현실에 만들어 냅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비저너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  실현을 사명으로 삼고 끝내 방법을 찾아 실현해 내기 때문입니다. 모쪼록 그런 주님의 믿음과 비전의 사람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샬롬, 승리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