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멘토링 칼럼 196

197. 모세의 비전 완성법_출애굽 현장보고와 모세의 인생 완성

샬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비전 멘토링 칼럼 오늘은 [모세의 비전 완성법_출애굽 현장보고와 모세의 인생 완성]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저는 이번주에 사우디아라비아를 거쳐 요르단을 방문했습니다. 그러면서 모세의 출애굽 여정을 답사했습니다. 오늘은 모세의 인생에서 중요한 두 산인 시내산과 느보산을 중심으로 현장 답사보고를 드리고 모세의 마지막 회상을 시편형식으로 정돈한 것을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여러분께서 이 칼럼을 들으신 이후에 구글 맵에 들어가셔서 영어로 황금 송아지 재단을 뜻하는 영어 Golden Calf Altar와 야훼의 시내산을 뜻하는 영어 Mount Sinai of YHWH를 치시면 놀라운 곳으로 인도받게 될 것입니다. 그곳은 여러분의 성경 책에 나와 있는 지도에 표시된 곳이 아닐 것입니다. 이유는 새로운 근거와 증거들이 발견된 곳으로 구글 맵이 그 위치를 수정을 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구굴이 새롭게 이름한 곳엔 과연 시내산과 황금송아지 재단의 증거가 있을까요?

성경에서 출애굽 여정으로 언급된 시내산이라면 어떤 증거가 있어야할까요? 성경엔 호렙산과 시내산으로 표현되어있는데 이것은 같은 산을 의미합니다. 성경의 시내산은 먼저 떨기 나무가 있어야 합니다. 둘째 아래에 황금 송아지 재단이 있어야하고 셋째 정상이 여호와의 불에 불탄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출애굽기 19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9:18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새롭게 지정된 시내산에는 떨기나무가 이곳 저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둘째, 돌산으로 둘려진 산 아래엔 넓은 공간이 있고 재단으로 사용하기에 매우 유혹적으로 자연형성된 제법 높은 돌 재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재단에는 다수의 소 그림과 소의 각을 뜰 수 있도록 하는 그림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 시내산 정상만 까만케 탄 흔적을 멀리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시내산은 돌산으로 출애굽기 19장 18절은 매우 구체적으로 산이 불타는 장면이 묘사됩니다. 그렇다면 그 불탄 돌산은 우리에게 어떤 증거를 주고 있을까요?  정상의 불탄 자국에 대하여 혼돈스럽게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시나이 반도와 미디안 광야의 특수성입니다. 이곳은 거대한 용암활동지역으로 대부분이 끝없이 펼쳐진 돌산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돌산들 중에 드문드문 불에 탄 것과 같은 곳들이 있습니다. 회갈색 돌산이 있다가 갑자기 진갈색 돌산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것이 창조와 그 이후에 용암의 작용으로 그렇게 된 것인지 혹은 하나님의 불에 의하여 그렇게 된 것인지를 구분하기에 혼돈을 줍니다. 과연 구분이 가능할까요?

사실 이 구분은 간단합니다. 용암으로 인해 색깔이 진해진 돌은 안과 밖에 같은 색깔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하나님에 의하여 불탄 곳의 돌은 그렇지 않습니다. 두 종류의 돌을 깨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시내산 정상에 있는 돌은 밖은 검은 계통 안에는 각각 다른 색깔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불로 임하셨다는 성경이 말하는 설명이 진실되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녕 시내산에 임하셔서 모세와 70 장로들을 만나주시고, 율법을 주시고 모세를 친구처럼 대하셨던 것입니다.

다음 의미 있는 산은 느보산입니다.

신명기 34장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34:1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 산에 올라가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34:7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모세는 신명기 34장이 말씀하시는 것과 같이 사해 저편에 있는 느보산에서 가나안을 보면서 죽었습니다. 그는 혼자 그 산을 올랐고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기까지라고 하셨기에 그곳에서 혼자 죽었습니다. 그 산에서 모세가 자신의 삶을 돌아 보면서 다음과 같은 시편을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POSTLUDE: 성전 봉헌과 모세 회상

1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말하리라

땅은 내 입의 말을 들을지어다  (신명기 32:1)

 

바로의 죽음의 저주를 받던 너희가

하나님의 생명의 복을 얻게 되었도다.

 

스스로 억압된 우상 숭배자들의 노예에서

스스로 계신 하나님의 자유자가 되었도다.

 

너희가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감사하여

거하실 성막을 건축하는 자가 되었도다.

 

그는 우주를 지으시고, 소유하신 분이시나

너희가 드린 작은 성막을 기뻐하셨도다.

 

이에 그 전능자가 어찌 복 주신 것을 알지니

너희와 동행하여 너희를 형통케 하셨느니라.

 

그가 너희가 멘 성막에 앞서 광야를 행하셨으니

너희를 노예가 아닌 예배자로 기뻐하셨느니라.

 

그러므로 호흡하는 모든 것들은 손을 들지어다,

목소리 높여 주를 찬양하고, 아멘, 아멘 할 지어다, 셀라.

 

 

 

2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말하리라

땅은 내 입의 말을 들을지어다 (신명기 32:1)

 

그가 나를 물 위에서 건져내게 하시고

그가 나를 물 가운데 걸어가게 하셨도다.

 

그가 광야에 별을 내어 피할 길을 밝히시고

그가 나무에 불을 내어 들을 귀를 여셨도다.

 

그가 바다를 갈라 길을 내시고

그가 바위를 갈라 물을 주셨도다.

 

그가 출애굽으로 노예에서 자유케 하시고

그가 시내산에서 죄악에서 자유케 하셨도다.

 

그가 율법을 통해 진리를 주시고

그가 성막을 통해 용서를 주셨도다.

 

그가 너희를 선으로 돌이키사 자녀를 삼으시고

그가 너희를 전으로 돌이키사 제사장 삼으셨도다.

 

우리의 목적지는 가나안의 젖과 꿀이 아니라

가난한 마음이 찾는 지성소인 것을 알지어다.

 

삶의 지성소에서 그와 동행하면 그가 행동하사

삶을 소생시키시며 모든 행사를 형통케 하시리라, 셀라.

 

이 시편은 큐티형식의 시편 출애굽기라는 책에 수록되어 있는 저의 시였습니다. 그의 삶을 돌아 보면서 그의 입장에서 적어본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한가지 생각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모세는 결론적으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저주받은 것일까요?

일차적으로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물이 나올 바위를 침에 있어서 화를 내고 친 것입니다. 그가 주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온전한 믿음으로 하지 않음으로 그가 온전한 축복을 다 받지 못하고 출애굽의 온전한 비전을 다 완성하지 못한 것은 맞습니다. 그러니 그가 저주 받은 자 일까요? 결론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는 다른 그림이 있습니다. 모세는 가나안에는 못들어 갔지만 하나님의 천국에 직접들어갔습니다. 그 증거는 모세는 천국에 갔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천국으로 떠나셔야할 상황에서 변화산에 엘리야와 더불어 온 것입니다. 이것이 말해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은 때로 하나님께 징계 받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에서 떨어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징계가 더 큰 사랑임을 알게됩니다. 모세의 경우 비전을 여호수아와 열두 부족장들에게 전수하고 주님의 천국에 더 빨리 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의 일을 감당하다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순간에 천국에 간다는 것은 그것이 언제이든지간에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천국은 하루라도 빨리가는 것이 축복입니다. 그렇기에 모세는 부르심을 받았을 때 편안하게 혼자 느보산에 올라 주님께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모세와 같이 어느 순간 부르심을 받더라도 편안하게 손을 놓고 갈 수 있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비전 멘토링 칼럼, 지금까지 모세의 비전 완성법_출애굽 현장보고와 모세의 인생 완성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살펴보았습니다.

출애굽 현장 답사 차원 시내산과 느보산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방문한 곳들은 성경에서 언급하는 모든 정황에 합당했고 현장을 보고 받은 역사성과 진실성, 그리고 진리성은 놀라웠습니다. 모세의 삶이 완성되는 시내산이었고, 느보산이었습니다.

우리 삶 속에서도 주님을 만나 비전을 받은 시내산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삶을 완성하고 떠날 느보산이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대충 살다가 대충 흔적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신 비전이 있어 가슴 뜨겁게 살고 가슴 벅차게 주님 품에 안길 수 있는 우리 모두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