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멘토링 칼럼 192

192. 모세의 비전 완성법_도망자편

샬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비전 멘토링 칼럼, 오늘은 [모세의 비전 완성법_도망자편]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지난 주에는 모세의 출생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모세의 성장 속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오늘은 첫째, 모세가 겪었을 정체성 고민에 대하여 살피고 둘째, 비저너리에게 오는 도전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모세 당시 이스라엘은 창세기 15장 13절에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이방의 객”으로 400년을 섬긴 후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징벌하실 때 큰 재물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출애굽해줄 구원자를 기다렸습니다. 어머니 요게벳은 아들 모세의 수려한 얼굴에서, 그리고 애굽 공주의 아들로 입적되고 자신이 유모가 되는 과정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위대한 뜻을 가지고 계심을 직감했을 것입니다. 요게벳은 젖을 먹이며 기도하고 노래하고 말해주고 말해주며 어린 모세의 심장에, 뇌리에 그리고 심령에 여호와 하나님과 출애굽의 비전을 세뇌시켰을 것입니다.

         모세의 정체성 고민

그런데 그런 모세의 청소년, 청년 시기는 어떠 했을까요? 애굽 이민자 모세의 성장은 미국에서 이민 생활을 하는 우리가 좀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어린시절 우리의 자녀들은 한국어로 예배도 드리고 기도도 드립니다. 그러나 청소년기에는 미국 학교에서 미국 친구들과 같이 다음과 같은 충성서약을 하면서 미국 시민으로 자랍니다.

  

“나는 미합중국의 국기에 대해, 그리고 이것이 표상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자유와 정의가 함께하고 하나님 아래 갈라질 수 없는 하나의 국가인 공화국에 대해 충성을 맹세합니다.”

애굽 이민자의 자녀로 애굽 왕궁에서 애굽 청년들 사이에서 교육받은 모세는 어떠했을까요? 유대 노예들의 누추함이 아닌 애굽 궁전의 화려함, 산해진미, 웅변술, 전략과 전술 등은 그를 매료시켰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청소년기에 애굽의 궁전에서 살면서 정체성 갈등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모세의 정체성 혼돈과 갈등을 감히 어떤 근거로 주장할 수 있을까요? 근거 없이 말하면 안 되고 성경에 있는 증거로 말해야 하겠죠? 제가 성경에서 찾는 근거는 출애굽기 2장 11-15 말씀입니다.

 

2:11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2:12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 

2:13 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 잘못한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2:14 그가 이르되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이르되 일이 탄로되었도다. 

2:15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는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출애굽기 2장 11절에서 모세는 히브리 노예들을 “자기 형제들”로 표현함으로 애굽 왕궁 교육을 통한 정체성의 혼돈 속에서도 히브리인의 정체성을 내면적으로 가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속사정을 표현한 것이 청소년 모세라는 제목의 다음 시편입니다. 들어보시죠.

 

청소년 모세

2:10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내 과거는 유대 노예 부모의 찬송이

내 현재는 애굽 공주 아들의 칭송이

 

내 뇌리엔 유대 부모 통곡의 기도들이

내 머리엔 애굽 궁전 왕실의 웅변들이

 

내 귀속엔 유대 노예의 비통한 신음이

내 귓가엔 애굽 궁전의 비범한 음악이

 

내 영혼엔 유대 노예의 비참한 처지가

내 육체엔 애굽 왕실의 화려한 사치가

 

내 낮엔 애굽 궁전에서 몰려 오는 선물들

내 밤엔 혼돈 고독으로 혼자 우는 눈물들

 

바로의 드세진 채찍에 늘어나는 한숨들

주님의 지체된 언약에 한탄하는 사람들

 

모세, 낮과 밤이 다른 나는 누구인가?

모세, 겉과 속이 다른 나는 누구인가?

 

지금까지 청소년 모세의 심정을 시편형식으로 정돈해 보았습니다. 그런 청소년기를 보내고청년기에 들어선 모세는 이 갈등을 어느 정도 정돈한 것을 보여 줍니다. 하지만 그것은 내면적 정돈이었을 뿐 외면적으로 그는 여전히 큰 갈등 속에 있었습니다. 그 증거는 그가 히브리와 애굽 어느 나라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사람으로 동족에게 배척 받고 바로에게는 쫒겨 도망쳤어야 하는 상황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어느 한쪽을 명확히 택했다면 양쪽에 배척 받지 않았을 것이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것을 정돈하는데 모세에게는 다음 40년이 더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때 모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다음 도망자 모세라는 제목의 시를 들어 보시죠.

 

 

도망자 모세

장성하여 한 일은 품속에 어머니의 기도를 기억한 것.

히브리 노예의 아픔 속에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한 것.

 

히브리인을 치는 애굽 사람을 치고 모래에 묻은 것 .

히브리 반역자가 되어 미디안 광야 모래에 숨은 것.

 

반역이 두려운 바로는 갓 태어난 모세를 죽이라 했고

반역을 의심한 바로는 살인을 한 모세를 죽이려 했다.

 

갈대 방주를 타고 나일강에 흐르며 운명을 모르던 모세.

나무 지팡이 하나로 사막을 헤매며 운명을 모르던 모세.

 

도도히 흐르는 나일강 강물, 그 목숨의 갈림 길에서

하나님, 여호와를 불렀다. 400년간 응답 없는 이름을!

 

여호와는 나일강에서 나를 건진 이를 양모로 주었고

여호와는 미디안에서 나를 건진 이를 아내로 주었다.

 

모래로 뒤 덥힌 미디안 광야, 이 운명의 내리막 길에서

하나님, 여호와를 부른다. 40년간 응답 없는 이름을!

 

모세의 고민을 공감하실 수 있었는지요? 위에서 살핀 시편 형식의 모세의 청소년기와 장년기 묵상은 저의 책 [시편형식의 QT 출애굽기]에 수록된 것들입니다.

 

모세의 비전에 대한 도전

그런데 말입니다. 혹시 이런 경험하셨습니까? 비전의 사람이 비전을 인식하고 그 비전의 일에 집중하려는 순간 바로 그 선한 깨달음을 깨트리는 정반대 도전이 시작됩니다. 히브리동족을 구원할 모세는 태어나자 마자 죽음을 당할 뻔하고, 또 애굽사람을 죽이고 동족에게 배척을 받고 도망자가 됩니다. 이런 패턴은 사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훗날 가족의 구원자가 될 요셉은 형들에게 팔리는 정반대의 일을 당합니다. 왕이 될 다윗이 사울에 쫓겨 적국 불레셋의 장군이 됩니다. 사탄을 물리치고 인류구원을 하려 40일 금식을 마친 예수님께 사탄이 미혹을 하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이런 일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우선 비전의 사람들에게 일어난 것이고, 비전의 일을 막 하려 할 때 일어난 사건들입니다. 그렇다면 답이 보입니다. 사탄이 하나님의 비전의 일을 인식하고 그쪽으로 향하는 비저너리들의 싹을 자르려 도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예수님을 영접하고 제대로된 신앙생활, 혹은 무엇인가 인생에 있어서 정말 의미 있는 일을 하려 할 때 오히려 건강, 가정 혹은 사업의 문제가 더 심각해졌었던 경험이 있지는 않으셨습니까? 그것은 여러분께서 하나님의 비전의 일을 하는 싹을 자르려는 사탄의 도전이었습니다.

 

비전 멘토링 칼럼, 오늘은 [모세의 비전 완성법_도망자편]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살핀 모세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다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우리는 한국인, 미국인, 세상 사람과 천국 사람 중에서 하늘과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 정체성을 확고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부르심을 인식하고 그 일을 하려는 사람에게는 그 싹을 자르려는 사탄의 도전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갈라디아서 6장 9절을 오늘 말씀에 적용하여 이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비전의) 한 일을 행하되 (사탄의 공격으로 인하여)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모쪼록 올 해에는 여러분과 자녀들이 주님 주신 비전을 명확하게 알고 비전의 정체성에 합당한 삶을 살며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샬롬, 승리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