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비전 멘토링 칼럼 지속적으로 계획 수립과 성취에 관한 비결에 대하여 살피고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간절하게 소원하시는 것이 있는데 이루어 지지 않아서 마음에 아픔이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오늘은 아브라함이 어떻게 그의 간절한 소원을 성취하게 되었는지 소원 성취의 세가지 비밀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그간 우리는 아브라함의 축복의 비결을 믿음이라고 보았습니다. 이 말은 당연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그는 믿음의 조상이라고 까지 불리우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기에는 사실 여러 믿음없는 일도 했고, 그의 삶엔 몇 가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그런 것들을 뒤로 하고 그는 믿음의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아브라함이 축복을 받는 과정을 살피면서 그가 축복을 받았던 비밀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잘 아시는대로 아브라함은 99세에 바뀐 이름이고, 그전의 이름은 아브람입니다. 아브람은 위대한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그런 그에게 75세까지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의 이름은 영예스러운 것이 아니라 조롱거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75세에 부르심을 받고 세가지 축복에 대한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 세가지 축복은 큰 민족, 큰 이름 그리고 복의 근원되는 복입니다.
그런데 그가 그 약속을 받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갔을 때 그곳엔 가뭄이 들어 그는 애굽에 갔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애굽에 가서 목숨을 건지기 위하여 아내인 사래를 누이라고 하고, 아내를 바로에게 바치는 일을 경험합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우리는 몇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첫번째 질문은 하나님께 대한 것으로,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지시하신 땅으로 갔는데 가뭄이 들었을 뿐, 약속하신 축복이 안 오지 않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어찌 애굽에 가서 아내를 바로에게 바쳤는가 하는 것입니다.
두번째 아브람에 대한 질문은 아브람의 믿음이 부족해서라고 한다 친다면, 첫번째 하나님께 순종하고 고향까지 버렸는데 약속을 지키지 않으신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믿음의 파라다임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기껏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아브람이 믿음이 없었다라고 말하는 것이지만, 믿음을 가지고 고향을 떠나 가나안에 간 그에게 그렇게 말하기도 좀 애매합니다.
그러나 이 부분의 이야기를 다른 관점에서 보면 왜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가나안에 도착하자 마자 약속하신 세가지 축복을 주시지 않았는지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이유를 알려면 전통적인 믿음의 관점이 아니라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그 다른 관점은 바로 비전과 가치입니다.
하나님과 아브람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비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비전을 주었고, 아브람은 불가능해 보이는 그 비전을 믿었습니다. 그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의로 여기셨습니다.
비전과 가치의 관점에서 아브람의 부르심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창세기 12장 1-3절까지 아브람이 부르심을 받을 때 그는 비전과 사명을 받습니다. 그는 비전으로 받은 것을 믿었고,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그가 받은 비전은 우리가 이미 살핀 세가지 축복인 큰 민족, 큰 이름, 그리고 복의 근원됨 입니다. 그의 사명은 고향과 친척을 떠나 하나님께서 보여주는 땅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비전 주실 것을 믿고 떠나는 사명을 감당합니다. 그러나 사명을 감당 했는데도 축복의 비전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때로 우리가 그렇게 간절하게 원하는 것들이 이루어 지지 않아서 힘들 때가 있습니다. 아브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아브람의 경우는 하나님께서 직접 약속하신 것들 인데도 이루어 지지 않았으니, 너무 이상하고 당황스럽습니다.
그럼 왜 비전을 믿고, 떠나라는 사명을 감당했는데 그 비전이 실현되지 않았을까요? 우리가 비전의 관점 속에서 아브람의 이야기를 보면 왜 비전 실현이 되지 않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비전의 관점에서 보면 궁극적인 비전이 있고, 장기, 중기, 단기 비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궁극적인 사명과 장기, 중기, 단기 사명이 있습니다. 이 관점을 가지고 아브람의 비전이 실현되지 않은 이유를 살피면 이유는 간단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주신 세가지 비전은 궁극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떠나라는 사명은 단기 사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궁극적인 비전은 단기 사명 하나를 감당했다고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의 기도가 응답 받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은 궁극적인 복인데, 우리가 단기 사명, 즉 한동안 교회를 열심히 나간 것, 한동안 새벽예배를 열심히 나간 것, 헌금을 많이 하는 것들만으로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 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이 실현된 것일까요? 당시 아브람이 살던 현대 이라크 땅인 우르를 떠나 터키의 하란을 거쳐 현대의 이스라엘 예루살렘으로 오는 여정은 약 1899KM거리이고, 하루에 10시간씩 걸으면 약 40일 거리입니다. 양떼와 함께 걸었다면 하루에 4시간씩 80일이 걸렸을 거리입니다. 그렇다면 80일간 사명을 감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인 비전은 80일간의 단기 사명 감당으로 실현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브람은 그 이후 애굽에,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에, 그리고 헤브론에 둥지를 틀고 25년을 지냅니다. 99세까지 그는 믿고 믿었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과 만날 때마다 자녀에 대하여 묻습니다. 그리고 안되는 것 같으니 종의 아들을 양자로 들일까도 했다가 하나님께 약속을 다시 받고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10여년이 지나도 약속 실현이 되지 않자 마침내 사래의 말을 듣고 애굽 하녀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낳기까지 합니다.
부르심 받은 후 24년까지 약속을 지키시지 않은 약속의 하나님, 그리고 믿음 없이 하갈에게 아들을 얻은 믿음의 조상 아브람의 이야기는 참으로 모순으로 가득 차 보입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일이 벌어집니다. 그것은 아브람의 99세때입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비전 실현을 기다리는 아브람에게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는 사명을 주십니다. 그러면서 이름을 위대한 아버지라는 뜻의 아브람에서 열국의 아버지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궁극적인 비전 실현을 위하여 궁극적인 사명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사명은 완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명은 사실은 가치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약속들, 즉 큰 이름, 큰 민족, 복의 근원이 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건강을 위하여 약을 먹으라던가, 부부간의 대화를 증진하라거나, 정치를 하라던가, 외교를 하라던가 하는 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하나님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하십니다. 이 ‘완전’은 훗날 하나님을 경외함을 통하여 완성되었다고 하나님께서는 선포하십니다.
결론적으로 아브람은 아들 갖는 것을 소원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자녀뿐 아니라 큰 민족, 큰 이름, 복의 근원이라는 생각도 못했던 비전을 주십니다. 이것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이 땅에서 무엇을 소원하든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 차원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 보다 더 귀한 것을 예비하시고 비전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비전이 때로 안 이루어 지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는데, 궁극적인 비전은 충분한 시간 속에서 궁극적인 사명을 감당할 때 실현된다는 것입니다. 시간 속에서 성숙하는 과정이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원을 성취하는 것에는 세 단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첫째이고, 비전을 받는 것이 둘째이고,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가치에 관한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셋째 요건입니다. 모쪼록 하나님 안에서 비전을 받으시고 실현하시는 축복을 누리시기를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