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비전 멘토링 칼럼 “오늘은 비전 멘토링은 성경적인가?”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어느분이 현대 교회의 현대 신학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인 글을 쓰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 중에 멘토링에 대한 부분이 있었는데, 멘토링은 성경에 없고, 성경적이지도 않다고 하시면서 교회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동의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기에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을 충분하게 이해합니다. 신학교를 다니면서 멘토링에 대하여 들었을 때 성경적인 단어가 아니라고 생각 들어서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또한 멘토링이라고 해봤자 제대로 된 멘토링처럼 느껴지지 않았고, 멘토링 방식을 흉내 내어 하는 정도 였기에 더더욱 그럴 것이면 그것은 멘토링도 아니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조금 더 소그룹으로 하는 것을 가지고 멘토링이라고 하거나, 새 신자가 교회 정착을 위하여 한동안 돕는 것에 멘토링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것들은 안하는 것보다 훨씬 좋고, 이전에 그냥 새신자반 이렇게 하는 것 보다는 훨씬 좋은 것이기에 안하는 교회보다는 앞서가고 분명 열매도 거두게 됩니다. 그러나 진짜 멘토링은 여전히 아닙니다.
그렇다면 진짜 멘토링은 어떤 것이며, 과연 멘토링은 성경적일까요? 답을 먼저 말씀 드리자면 “진짜” 멘토링은 성경적입니다. 진짜 멘토링의 모델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그것들을 하나씩 살피기 전에 과연 멘토링과 멘토가 성경적인 단어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 멘토 혹은 멘토링이라는 말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번역해야 하는 단어는 있습니다.
성경 번역에 멘토라고 번역된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멘토라고 번역해야 할 말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말은 무엇이고, 왜 그럴까요?
답을 드리면, 그 말은 신약이 쓰인 원어인 헬라어로 파라크레토스이고, 이것이 멘토라고 번역되어야 하는 말인데 그렇게 번역 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신약 성경을 번역할 때는 이 단어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멘토라는 단어는 잘 아시는 바와 같이 BC 1200년 경에 일어난 그리스와 트로이와의 전쟁의 이야기를 기록한 호머의 일리아드에서 등장하는 사람 이름 입니다. 오디세이라는 왕이 떠나며 그 아들 텔레마코스를 지혜자 멘토에게 교육을 맡겼는데 교육을 잘했다는 것에서 기인합니다. 그러나 멘토가 우리가 아는 멘토라는 개념으로 쓰이게 된 것은 일리아드라는 책이 아닙니다. 1694년에 텔레마코스의 모험이라는 책을 통해서였습니다. 이 책은 프랑스의 주교, 신학자, 신학교 학장이었던 프랑수아 페넬롱 François Fénelon (1651-1715)에 의해 쓰여졌습니다. 페넬롱은 일리아드를 프랑스어로 번역후에 자신의 멘티인 루이 14세의 손자를 교육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텔레마코스의 모험이라는 책을 쓰면서 멘토가 텔레마코스에게 이상적인 국가 통치에 대한 교육을 했다는 소설을 쓴 것입니다. 그러면서 망나니 같았던 루이 14세의 손자, 통치 서열 3위인 그를 훌륭한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것을 통하여 유럽에서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훌륭한 교사의 대명사로 멘토가 쓰여졌고, 멘토가 한 방식의 교육을 멘토링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교육 하신 방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멘토링 방식은 다음에 자세히 살피기로 하고 오늘은 파라크레토스라는 말에 집중하겠습니다. 그렇다면 파라크레토스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이 말은 우리가 보혜사로 번역하는 성령님의 별명입니다.
보호하고 은혜를 주시는 분이라는 뜻의 보혜사는 희랍원어로Παράκλητος 파라크레토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옆이라는 pare파라와 부르다라는 뜻의 kaléō칼레오의 합성어입니다. 옆에서 나의 사정을 잘 앎으로 나에게 가장 합당한 법적인 판단에 도움을 주는 변호사, 옹호자, 위로자, 중보자, 조력자, 상담자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변호사, 옹호자, 위로자, 중보자, 조력자, 상담자를 모두 대변할 한 단어는 무엇일까요? 그것을 해줄 사람이 있는데 바로 비전 멘토입니다. 비전 멘토는 그래서 비전 멘티에게 비전의 부모역할을 합니다. 왜냐하면 서로 같은 비전과 운명을 공유하면서 모든 자원을 전수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의 비전 멘토이십니다. 멘토라는 말이 성경을 번역하는 당시에 없었던 말이고, 최근 교육에서 중요한 단어가 되었기에 성령님을 멘토라고 번역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살핀 것과 같이 “옆에서 나의 사정을 잘 앎으로 나에게 가장 합당한 법적인 판단에 도움을 주는 변호사, 옹호자, 위로자, 중보자, 조력자, 상담자”의 뜻을 가진 단어 하나는 선택하라면 그것은 멘토입니다. 성령님은 단순한 멘토가 아니라 하나님의 깊은 비밀을 아시는 분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비밀을 드러내어 비전으로 알게 하시고, 그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을 세밀한 음성으로 알려 주시는 분이십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최고의 비전 멘토가 되십니다. 그 증거를 말씀에서 찾아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6:13에서 다음과 같이 성령님을 소개 합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여기에서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첫째, 성령님은 “장래 일을” 우리에게 알리십니다. 성령님께서 알게 하시는 장래 일이 우리의 비전입니다. 둘째, 우리를 직접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 해 주십니다. 이렇게 직접 진리 가운데 인도해 주시는 것이 멘토링입니다.
이제 바울 사도가 성령님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로마서8:26-28을 통하셔 살펴 보겠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8:26-28.
이 구절은 비전 멘토로서 성령님의 역할을 가장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우리가 기도할 바를 모를 때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십니다. 성령님은 단순한 교사가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비전을 통하여 알게 하시고, 성령님께서 역사하심으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 주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님은 우리에게 비전 멘토가 되십니다.
비전 멘토링 칼럼 지금까지 우리는 비전 멘토링이 성경적인지를 살펴 보았습니다. 일반 멘토링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그냥 교육 방법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그러나 비전 멘토링은 성경적일 뿐 아니라 성령적입니다. 그 증거를 오늘 성령님의 별명인 보혜사 파라클레토스라는 헬라어를 통해 살폈고,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이 비전을 주시고, 멘토링 방식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살폈습니다.
그래서 이미 많은 분들이 성령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비전을 받고, 멘토링 방식으로 길을 인도함을 받고 계십니다. 성경에 허다한 이야기가 그것을 증명하고, 또 우리 가운데에도 그런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여러분들께서도 비전 멘토이신 성령님과 동행 하시며 주님의 비전의 일을 도모하시며 형통하시기를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