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멘토링 칼럼 8

8. 보이는 것의 실상: 믿음과 미래 사이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비전 멘토링 칼럼 오늘은 “보이는 것의 실상: 믿음과 미래사이”라는 제목으로 생각해 봅니다.

 

히브리서 11장 1-2절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이 잘 이해 되시는 분들은 하나님께 지혜와 명철을 받으신 분들입니다. 이 말은 좀 난해한 구절입니다. 믿음이 바라는 것의 실상이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는데 무슨 뜻일까요?

 

히브리서는 이어지는 글들에서 믿음의 사람들이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행하고, 복을 받았는지를 예를들어 설명 해줍니다. 그것을 통하여 알게되는 것은 믿음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 과거, 현재, 미래의 일들을 오늘 믿는 것이라라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과거 천지창조를 보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믿는 것이고, 미래에 될 일들, 궁극적으로 천국, 하나님의 나라, 새 예루살렘의 축복된 미래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믿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믿음 가운데 있는 이들은 이 모든 것들을 믿는 것이 당연하고, 쉽지만, 믿음 밖에 있는 이들에게는 이 말들은 하나 같이 황당한 말들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 할 때 믿음이 없는 분들에게 이 말은 알듯도 하고 모를듯도 한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쉽게 하는 장치가 있는데 이 장치를 사용하면 믿음이 쉬워집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비전입니다.

 

믿음이라는 말을 비전으로 대체하여 보면 이 말씀이 쉽게 이해됩니다.

 

“비전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라고 읽으면 너무나 쉽게 이해됩니다. 정말로 바라는 것의 실상,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는 비전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이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되는 것입니다. 비전은 우리가 지금 육체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들을 영의 눈으로,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게 해줍니다. 그래서 미래의 일들을 비전을 통하여 보게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은 무엇일까요? 믿음은 그 미래가 하나님 안에서 본대로 완성 될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믿음과 미래 사이에 비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행여 이러한 시도를 말씀을 변개하는 것으로 보지는 않으시지요?  지금 우리가 한 시도는 그런 차원이 아니라, 히브리서 11:1-2절에서 뜻하는 바를 최대한 쉽게, 그리고 정확하게 이해시켜 드리려 노력 한 것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의 기록자는 하나님께서 언약으로 주신 것을 비전으로 받고, 믿고 의에 이르고, 삶을 완성한 사람들의 허다한 예를 우리에게 설명해 줍니다. 자, 잠시 현대로 눈을 돌려서 미래의 일을 비전으로 보고, 믿은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생겼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지혜가 있는 사람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함께 알아서 그것을 누립니다. 과거의 지혜를 활용하고, 미래의 비전을 보면서 아무도 모르는 일들을 미리 알고 선점하게 됩니다.

 

예를들어 세상에 거부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1900년대 미국에 이민 온 유대인들은 부동산 개발과 주식의 미래를 알고는 땅과 돈에 투자하였고, 거부들이 되었습니다. 1970년대 빌게이츠와 스티브잡스는 컴퓨터의 시대를 미리 보았고 선점하였고, 거부가 되었습니다. 1980년대 일본의 거부 손정의, 구글의 에릭 에머슨 슈미트는 컴퓨터와 인터넷의 미래를 먼저 보았고, 선점하여 거부가 되었습니다. Facebook의 저커버그, 카카오의 김범수 사장은 소셜 네트웍의 미래를 먼저 보고 거부가 되었습니다. 아마존의 베프 존스, 알리바바의 마윈은 인터넷 상거래의 미래를 먼저 보고 거부가 되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미래를 먼저 본 것이 바로 비전입니다. 비전으로 그들은 미래를 먼저 보았고, 그들이 본 미래 비전을 따라 먼저 행했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면서, 사회에 공헌하면서,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럼 그들만 그런 비전의 미래를 생각했을까요? 아닙니다. 그 시대에 컴퓨터공학과 인터넷을 먼저 접한 이들도 비슷한 생각은 했을 것입니다. 그럼 그렇게 생각했던 많은 사람들과 이들에게는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요? 많은 이들이 생각만 할 때, 이들은 미래를 비전으로 보았고, 믿음으로 믿었고, 행동을 했습니다.

 

미래를 미리 본 사람들을 비저너리, 비전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 비전 실현을 사명으로 품고 행동하는 사람을 미셔너리, 사명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간 우리는 믿음을 강조하여서,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됨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경건하고, 착하고 선하게 사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성장하여 성도, 전도사, 선교사, 목사가 되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각자의 비전 분야에서 미래를 미리 보고, 역사적 주제를 선점하여 이끄는 세상 속에서의 비저너리와 미셔너리 부분은 약했습니다.

 

모든 인류의 긍국적인 비전은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 새 예루살렘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동시에 생각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이 땅에서 완성하며 누리도록 하신 개인적 비전입니다. 이 개인적 비전의 합이 교회의 비전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각 개인들에게 주신 비전은 교회내에서만 이루지지 않습니다. 사회 현장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각 개인에게 주신 비전을 알게하고, 실현케 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 된다면, 교회도 풍요롭게 되고, 비전의 현장인 사회가, 국가가 하나님의 나라로 변하는 지름길입니다.

 

오직 믿음이라는 기초위에 이제는 비전을 더하여 알고 실현하여야 합니다. 그럴때 각 개인과 가정과 교회가 풍요로워지고, 국가가 통째로 하나님의 나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미래의 비전은 우리 모두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가 되고, 우리가 우리 후손들에게 남길 증거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그리고 다가오는 모든 날에 주님의 비전 가운데 믿음으로 행하는 비저너리과 미셔너리가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