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비전 멘토링 칼럼, 오늘은 [욥과 현대판 욥, 프랭클의 비전]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욥의 고난 이야기
욥이라하면 졸지에 모든 가족과 재산과 건강을 잃고 고생을 하면서 신앙적 다툼까지 했어야 했던 괴로운 사람이 떠오릅니다. 욥기 1-2장에서 일어난 사건을 요약하면 적군이 쳐들어와 칼로 죽이고, 빼았고,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 재산과 종들을 사르고, 큰 바람이 불어 집이 무너지고 죽음을 당하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건강까지 잃은 사건입니다.
유대인의 고난 이야기
그런데 이것이 고대에 욥이라는 유대인 한 명에게만 일어난 사건이 아니고, 또한 우스라는 땅 한 편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인가하면 2차 세계 대전 때 유럽이라는 땅에 나치 영향권 속에 살던 유대인에게 일어난 사건과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욥기에서 말한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고 큰 바람이 불어 집을 삼키는 장면은 2차 세계 대전 시 하늘에서 불 폭탄이 떨어지고 그 포탄에 집들이 날아가는 장면을 말해 주는 것 같아 섬뜩할 지경입니다.
2차 세계 대전 전에 유대인들은 나름 존중받으면서 자신의 영역에서 부와 명예를 일군 욥과 같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 중엔 부와 명예, 재산과 건강을 다 잃고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감금된 사람도 많았는데 유대인들의 반응은 다양했습니다.
유대인들의 반응
어떤 이들은 나치편에서서 나치의 악을 실행하는 앞잡이가 되어 동족 유대인들을 더 잔혹하게 학대하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서 이런 것이니 “하나님, 이제 우리를 선택하지 마시고, 제발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소서”하며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좌절하고 낙심하여 죽기를 소원하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언젠가 이 상황에 반전을 주실 것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나치가 어찌하든지 나치의 유대인 앞잡이 카포들이 어찌 악하던지를 떠나서 하나님의 형상성을 소중히 여기며 자신보다 더 힘든 사람들에게 도움을 줌으로 아우슈비츠 지옥 수용소를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이라면 마지막 사람들과 같이 하셨겠죠?
프랭클의 반응
여러분들과 같은 선택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우리가 지난 4주간 다루었던 오스트리아 정신과 의사 빅토 프랭클박사입니다. 왜 제가 현대의 정신과 의사 프랭클 박사를 욥과 비유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프랭클 박사는 욥과 비슷한 이유로 고난을 당했고, 욥과 비슷한 유력자들과 논쟁을 벌였고 욥과 비슷한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프랭클 박사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논쟁을 벌였습니다. 욥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프랭클은 고난이 오기전 20대 어린 시절에 같은 오스트리아에 살던 동족 유대인들로 당시 69세 할아버지 프로이드와 55세 아버지 나이의 아들러의 이론에 반기를 들고 보다 신앙적이고 깊이 있는 이론을 펼쳤습니다. 프로이드는 성욕과 같은 욕망이 인간의 삶을 지배한다고 보았고, 아들러는 열등감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삶을 지배한다고 보았습니다. 반면 프랭클은 깨달은 삶의 의미가 삶을 움직이는 동력이 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면 프랭클은 어떻게 그렇게 어린 나이에 그런 지혜와 용기를 얻었을까요? 그의 지혜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에서 나왔고, 용기는 비전에서 나왔습니다. 그는 같은 유대인인 정신의학자 프로이드와 아들러가 버린 성경의 말씀을 죽을 때까지 묵상했습니다.
그럼 그의 고난은 과연 욥과 어떤 유사성이 있을까요?
프랭클은 신실한 유대인으로 26세에 의사자격증을 획득하고 자신의 영역을 개척했습니다. 2차세계 대전이 1939년에 발발했지만 전쟁 피해자들을 도우며 의사 생활을 했고 1942년 38세에 결혼까지 합니다. 그러나 끝내 유대인이라는 사실에 발목이 잡힌 그는 결혼 9개월 만에 그의 신부와 부모와 더불어 체코에 있는 테레지안슈타트수용소에 갇힙니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죽고, 그와 어머니 엘사와 동생 월터 3명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이송되었습니다. 어머니와 동생이 그 수용소에서 죽습니다. 프랭클 박사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행방을 모르는 신부를 그리워하면서 고난을 견딥니다. 그러나 훗날 그 꿈에 그리던 9개월의 신부 틸리가 베르겐 벨젠에서 죽은 것을 알게 됩니다. 현대판 욥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 혹독한 고난을 겪고 마침내 전쟁이 끝나고 수용소 밖 광야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저는 제 비좁은 감방에서 주님을 불렀나이다.
그런데 주님은 이렇게 자유로운 공간에서 저에게 응답하셨나이다.”
그의 고백 속에는 놀랍게도 하나님께 대한 원망이 없습니다. 기도 응답에 대하여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모든 고난을 지난 후 우려져 나오는 감사와 찬송이 배어 있을 뿐입니다.
프랭클 박사는 이런 고난이 끝난 불과 1년 후인 1946년에 우리가 지난 4주간 살핀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 영어 제목으로는 Men’s Search for Meaning이라는 책을 출판합니다. 그런데 이 책의 독일어판 원 제목이 놀랍습니다. 직역하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예스라고 하십시오: 심리학자의 강제 수용소의 경험입니다. 사탄이 자신의 휘하를 동원하여 욥에게 고난을 주었던 것과 같이, 사탄이 히틀러와 나치를 충동질하여 그의 모든 재산을 파괴하고, 부모를 죽게하고, 신혼 9개월의 신부와 강제로 이별하게 하고, 끝내 그녀를 죽게 한 상황에서 죽음아, 사탄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있느냐고 비웃으며 하나님의 승리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런 승리의 자세는 욥을 상기시킵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 1:21-22)
사실 욥에게 일어난 사건의 원인은 하나님과 사탄의 대화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순수한 믿음을 확신하셨고, 사탄이 어찌 하던지 욥은 그것을 지킬 것이라고 믿으셨습니다. 사탄이 자녀와 재산과 건강을 가져간 상황에서도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2차대전 때 프랭클과 많은 유대인들에게 일어난 사건의 원인을 히틀러와 나치로 알지만 당연히 사탄이 배후였고,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원망치 않는 프랭클을 보면 욥을 떠올리지 않을 수없습니다.
프랭클이 고난을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
그러면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그는 어떻게 그렇게 빨리 가족 죽음의 고통과 수용소에서 당한 고난을 딛고 남들을 돕는 책을 쓰고, 정신과 의사로 역동적으로 일 할 수 있었을까요?
그가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비전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무의미하게 죽어갈 때 프랭클은 여전히 삶엔 예스라고 말 할 수 있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말해 줌으로 회복되어 행복학사는 사람들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이론과 비전이 프로이드와 아들러의 평화시 돈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될 이론이 아니라 이런 재난에서 더 필요한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지키시고 욥기를 통하여 고난 받은 자들을 위로하신 것과 같이 프랭클을 통하여 또 그의 책을 통하여 이 시대를 위로한 것입니다. 프랭클은 후에 신구약을 믿는 신실한 여자와 결혼을 했고 죽을 때까지 유대교 회당과 성당을 다니며 말씀을 외우고 묵상하는 삶을 삽니다.
비전 멘토링 칼럼, 지금까지 욥과 현대판 욥, 프랭클의 비전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깊은 비밀을 아십니다. 삶에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존재 목적을 비전 차원에서 인식하고 그 비전 실현을 사명으로 삼고 살아갈 때 온전하게 인식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프랭클의 삶은 그것을 증명해 줍니다. 그래서 그것을 사명 삼았기에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지속적으로 그의 이론을 개발하고 책을 썼고, 수용소에서의 고통을 이길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이제 이 비밀을 아는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믿음위에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찾고 실현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모쪼록 여러분들께서도 삶 속에 있는 다양한 도전에 대하여 하나님의 눈으로 삶의 의미와 비전을 파악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여러분만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교회 가족의 비전을 찾아주는 것을 비전과 사명으로 삼으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비전을 찾은 이들이 힘있게 사는 모습 속에서 기쁨을 누리시고 상급을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