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비전 멘토링 칼럼, 오늘은 [빅토 프랭클의 “의미”와 비전]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빅토 프랭클은 1905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유대인 정신과 의사입니다. 그의 출생년도와 출생지 그리고 출생 신분을 통합하여 보면 한 가지 그림이 나옵니다. 그의 시대는 히틀러로 시작된 2차세계 대전이 포함되고 오스트리아의 유대인들은 무자비한 취급을 받았습니다. 정신과 의사면 좀 달랐을까요? 그는 독일 패망이전 3년동안 다하우와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보냈습니다. 보냈다는 말의 의미는 늘 옆 가스실에 동료나 누군가의 죽음을 직면하며 자신의 목숨을 매일 확인했어야 하며, 굶주림과 동료 유대인 감독에 의한 무자비한 강제노역과 추위와 싸웠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코로나 이후 피폐해진 경제로 인하여 다양한 어려움에 처하고, 그 스트레스로 인하여 영혼육이 핍절해 있으시고, 관계의 어려움으로 앞이 캄캄하다고 생각하신다면 빅토 프랭클의 경험에서 나온 지혜에 귀 기울여 보십시오.
죽음의 수용소에 들어가서 3년간 중노동을 하면서 살아낸 정신과 의사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떻게 살아 남았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죽음의 수용소에서 중노동을 하며 겨우 잠자고 겨우 연명하는 곳에서 과연 정신과 의사는 어떻게 살아 남았을까요? 중노동을 하는 곳이고 정신과 의사라고 특별하게 봐주는 곳도 아닌 곳에서 살려면 육체 노동에 특화된 사람이 살아남을 확률이 높지 않았을까요? 책벌레인 정신과 의사는 상대적으로 불리하지 않았을까요?
프랭클의 논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삶의 의미를 발견한 사람은 절망하지 않고 살아야야할 이유를 발견한다. 그리고 살아야할 의지를 발견한 사람은 어떻게 살지도 알게 되고 살아낸다입니다. 그는 그 가혹한 죽음의 수용소에서 비교적 건강한 사람도 삶에 의미를 찾지 못할 때 죽어가고, 비교적 건강하지 못했던 사람도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는 살아난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삶의 의미를 가진자와 그렇지 않은 자들의 차이를 정신치료에 적용했습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수용소에서든 오늘 풍요 속에서든 의미를 발견하지 못함으로 무의미 속에서 죽어간다는 것입니다.
다음 내용은 그의 책 Men’s Search for Meaning을 한국 이시형 정신과 의사께서 번역한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다음 글의 소 재목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삶의 의지를 불러일으킨다”입니다.
수용소에서 수감자가 입은 정신 병리적 상처를 정신 요법이나 정신 위생학적 방법을 이용해 치료하려면 그가 기대할 수 있는 미래의 목표를 정해 줌으로써 내면의 힘을 강화시켜 주어야 한다. 수감자 중에 몇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 스스로 그런 목표를 찾아내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특성으로, 이렇게 사람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만Sub specie aeternitatis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기대를 갖기 위해 때때로 자기 마음을 밀어붙여야 할 때가 있음에도, 인간 존재가 가장 어려운 순간에 있을 때 그를 구원해 주는 것이 바로 미래에 대한 기대이다.
내가 실제로 경험했던 일이 생각난다. 그날 나는 눈물을 흘릴 정도의 극심한 통증(찢어진 신발 때문에 발에 심한 종기가 생겼다)을 겪으며 긴 행렬에 끼어서 수용소에서 작업장까지 몇 킬로미터를 절뚝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날은 추웠고,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사정없이 내리쳤다. 나는 누추한 생활과 연관된 자질구레한 문제들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 저녁에는 무엇을 먹게 될까? 만약 특별 배급으로 소시지가 나온다면 그것을 빵과 바꾸어 먹을까? 2주일 전에 상으로 받았던 담배 한 개비를 수프 한 그릇과 바꾸어 먹을까? 한쪽 신발 끈이 끊어졌는데 끈을 대신할 철사를 어디서 구하지? 시간 안에 작업장에 가서 평소에 내가 일하던 작업반에 낄 수 있을까? 그렇지 않고 다른 작업반에 들어갔다가 거기서 고약한 감독을 만나면 어떻게 하지? 이렇게 매일 긴 행렬에 끼어서 작업장에 가지 않고 대신 수용소 안에서 일할 수 있도록 나를 도와주는 카포는 없을까? 그 카포와 잘 사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러다가 매일같이 시시각각 그런 하찮은 일만 생각하도록 몰아가는 상황이 너무 역겹게 느껴졌다. 나는 생각을 다른 주제로 돌리기로 했다. 갑자기 나는 불이 환히 켜진 따뜻하고 쾌적한 강의실의 강단에 서 있었다. 앞에서 청중들이 푹신한 의자에 앉아 내 강의를 경청하고 있었다. 나는 강제 수용소에서의 심리 상태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나를 짓누르던 모든 것들이 객관적으로 변하고, 일정한 거리를 둔 과학적인 관점에서 그것을 보고 설명할 수 있게 됐다. 이런 방법을 통해 나는 어느 정도 내가 처한 상황과 순간의 고통을 이기는 데 성공했고, 그것을 마치 과거에 이미 일어난 일처럼 관찰할 수 있었다. …
미래─ 그 자신의 미래 ─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수감자는 불운한 사람이다.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과 더불어 그는 정신력도 상실하게 된다. 그는 자기 자신을 퇴화시키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퇴락의 길을 걷는다. 일반적으로 이런 현상은 아주 갑자기 위기라는 형태를 띠고 일어난다.
수용소 생활을 해 본 사람들은 이런 징후에 아주 익숙해져 있다. 우리 자신 때문이 아니라(별 의미가 없기는 하지만) 친구 때문에 우리는 모두 이 순간을 두려워했다. 대체로 이런 현상은 아침에 수감자가 옷 입고 세수하는 것을 거부하거나 아니면 연병장으로 나가는 것을 거부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간청과 주먹질, 위협도 효과가 없다. 그냥 누워서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만약 이런 위기가 병 때문에 생긴 것일 경우 그는 병실로 옮겨지는 것을 거부하고, 그 밖에 도움에 되는 그 어떤 것도 거부한다. 그냥 포기하는 것이다. 자기가 싼 배설물 위에 그냥 그렇게 누워 있으려고만 한다. 세상 어떤 것으로부터도 더 이상 간섭받지 않고. (187-190/338)
이상은 프랭클 박사가 어떻게 죽음의 수용소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그렇게 미래를 상상하며 어려움을 극복한 그가 수용소에서 나와 한 고백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유를 찾은 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수용소 근처에 있는 시장으로 가려고 꽃이 만발한 들판을 지나 시골길을 걸었다. 종달새가 하늘로 날아올랐고,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주변 몇 마일 안에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드넓은 대지와 하늘, 종달새의 환호 그리고 자유로운 공간만이 그곳에 있었다. 222
나는 멈춰 서서 주변을 돌아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런 다음 무릎을 꿇었다. 그 순간 나 자신은 물론, 이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단 한 가지만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저는 제 비좁은 감방에서 주님을 불렀나이다. 그런데 주님은 이렇게 자유로운 공간에서 저에게 응답하셨나이다.”
비전 멘토링 칼럼, 지금까지 2차대전 당시 유대인으로서 핍박을 받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3년간 중도동을 하며 살아 남고 후에 그 경험을 통하여 로고테라피를 개발한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 [빅토 프랭클의 “의미”와 비전]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모두가 중노동, 추위와 허기와 자유의 박탈과 인격적 무시 속에서 죽어갈 때 그는 삶에 의미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미래에 자신이 강의를 하면서 행복해하는 것이었습니다. 프랭클 박사는 이것을 의미의 발견이라고 표현합니다. 다른 쉬운 말로 말하면 비전입니다. 그는 그 죽음의 수용소의 현실과 상실을 뛰어 넘어 존재하는 미래의 비전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비전이 주는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프랭클 박사 보다 더한 혹은 비슷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경험 속에서 나온 지혜는 우리에게 큰 힘을 줍니다. 그가 자유케 된 후에 했던 다음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될 줄로 믿습니다.
“저는 제 비좁은 감방에서 주님을 불렀나이다. 그런데 주님은 이렇게 자유로운 공간에서 저에게 응답하셨나이다.”
빅토 프랭클 박사는 후에 그의 비전대로 세계적 정신과 의사로 강의하며 많은 이들을 치유했습니다. 네 모쪼록 모든 분들께서 삶의 의미를 비전 가운데 발견하시고 승리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다음 주에 빅토 프랭클 박사의 로고테라피와 더 깊은 의미와 비전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