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비전 멘토링 칼럼, 오늘은 [예수님의 복음_하나님 나라 이민 국적자로서의 삶과 죽음 1]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그동안 신앙 생활이 어려우셨나요? 신앙, 하나님의 나라, 믿음 이런 말들이 알다가도 모를 추상적인 개념이 있었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말씀에 귀 기울여 보십시오.
성경적인 이민으로써의 구원론
하나님 나라 이민 국적자가 무슨 뜻일까요? 이민은 한 나라에게 다른 나라로 귀화하여 시민권을 취득하는 법적 과정을 말합니다. 미국에서 사는 우리는 미국의 국적과 미국 법에 따라 살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구원이라는 말은 그간 어느 나라에 살았든 이제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은 하나님 나라의 실체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국민 혹은 군인, 공무원, 특공대원, 기업인으로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이민의 관점으로 보는 것은 신학적일까요? 여러분들 중에는 이미 “이민신학”이라는 용어를 들어보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일찍이 이정용교수는 예수님을 천국에서 오셔서 이스라엘에서 사시면서 천국과 이스라엘을 연결해주는 주변인으로 규명한 주변인 신학, theology of marginality을 개발했습니다. 오상철 목사님은 이민자들과 이민 교회들이 이민국인 미국에서 어떻게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할 것인지에 관하여 연구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말씀드릴 이민으로써의 신앙생활은 미국과 같은 이민국에서 잘 살기 위한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귀화한 이민 국적자로서 미국에 파송된 사람으로 살아가는 삶으로 우선 순위를 바꾸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우선 이민으로의 구원과 신앙생활은 성경적인 개념일까요? 답은 네 그렇습니다. 성경적이라하면 성경에 있다는 것이고 누군가 말한 것이죠. 그럼 도대체 성경 어디에서 누가 이런 말을 할까요?
원조는 예수님
놀라지 마십시오. 삶과 죽음, 구원의 완성을 이민이라는 관점에서 말씀하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네, 맞습니다. 예수님이십니다.
단순한 예수님의 복음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전해주신 기쁜 소식의 핵심은 단순합니다. 유대인들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이 계심과 그 분이 신중의 신, 왕 중의 왕이심을 알기에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필요는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신이 있는지 없는지 부터 존재 증명을 해야하는 변증법적인 과정은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예수님의 복음은 혁명적이셔서 하나님을 오래 섬겨온 이스라엘 제사장과 백성들에게도 충격을 주셨습니다. 그 혁명적 내용이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하시죠?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 되신다는 것과 우리가 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대중에게 처음 말씀하신 것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입니다. 그 천국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새롭게 소개된 하나님
그 동안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두려움의 신, 그래서 하나님 앞에 서고도 죽지 않은 것에 신기함과 기쁨을 인하여 기드온은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 샬롬이라 부를 정도였습니다. 물론 하나님을 두려운 분으로 인식하는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일단 구약의 경험으로 노아 때 인류가 멸절 당했고, 소돔과 고모라가 유황불에 멸망 당했고, 출애굽 이후 불신앙을 가쳤던 고라 일당이 뱀과 지진과 칼로 죽임을 당했고, 출애굽을 했던 애굽 태생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고, 성궤를 함부로 만졌던 웃사가 즉사를 당하고, 불신앙을 가진 이스라엘 북왕국과 유다 남왕국이 망하고 바벨론으로 유수를 가는 등 하나님은 심판하시고 죽이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소개하신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이셨습니다.
새롭게 소개된 하나님의 나라
그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상적인 나라는 이 땅에 존재하는 다윗의 왕국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음성에 따라 통치하며 풍요롭게 사는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그간 이스라엘은 애굽, 블레셋, 암몬, 앗수르, 바벨론, 바사, 그리스, 로마에게 지속적으로 속국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국가가 있으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렇게 강대국의 속국으로 살아가는 가운데 예수님은 전혀 새로운 국가를 소개하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새롭게 소개된 정체성
이미 살핀 것을 정체성의 관점에서 살피자면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개인적으로는 목자없는 양, 국가적으로는 울타리 없이 광야에서 방황하는 국가없이 길 잃은 양입니다. 그래서 열방들에게 소유를 빼앗기며 핍박을 받으며 가난하고 비참하게 노예와 종과 같은 삶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런 이스라엘의 정체성에 새로운 답을 제시하십니다. 목자없는 양 같은 이들에게 목자로 오셔서는 고아가 아니라 아버지가 계신데 그분은 우주 최강, 우주 최고의 하나님이시라는 혁명적 비밀을 주십니다. 그리고 국가를 잃고 들짐승들에게 먹히고 있는 이들에게 당시 최강국인 로마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최강 군대와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우주 최강국인 하나님의 나라를 소개해 주십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새로운 정체성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신학적 개념을 잘 설명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누가복음 15장 탕자의 비유입니다.
탕자의 비유
탕자가 타국에 가서 불신앙으로 살면서 모든 돈과 권세를 잃고 그 나라에서 돼지를 치면서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를 먹는 처지가 됩니다. 그런데 그의 구원은 다시 그가 잃어버렸던 아버지의 나라에 돌아오고, 아버지의 아들의 신분을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은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 사시는 나라가 전제가 되고, 우리는 타국에서 노예로 사는 존재라는 것이 전제가 됩니다. 그리고 구원은 아버지의 나라에 돌아와서 아버지와 관계를 회복하고 자녀의 신분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 나라의 국적을 얻는 것
그런 의미에서 구원을 받고 사는 삶은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세상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의 국적을 바꾸는 이민과 귀화의 상황입니다. 이런 개념이 전통적 하나님 나라 신앙과 차이점은 그간은 죽은 후 지옥을 가지 않고 천국에서 살게 되는 것이 구원이라고 본 것에서 구원은 지금 당장 하나님 나라 국적을 가지고 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지상 지방정부
그런 관점에서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지상, 지방 정부가 됩니다. 누군가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을 받는 다면 그의 이름이 하나님 나라의 생명록에 기록되고, 그 정보가 지상 지방정부인 교회로 연락되어 교회에 출생등록이 됩니다.
제자됨은 하나님 나라의 공무원/군인이 되는 것
한 발자국 더 나아가면 사역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정부요원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지방이민국, 지방정부, 지방군대, 지방학교, 지방병원, 지방기업에서 역할을 감당하는 것과 같습니다.
직장은 하나님 나라의 파견소
제자가 된다는 것은 보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께서 이 땅에 비전을 가지고 오셨던 일을 계승 발전시키겠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엔 내적으로는 하나님의 형상을 완성하고, 외적으로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사역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하기 위하여 핵심적인 것이 비전입니다.
비전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존재목적을 알려 주시는 것
비전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존재목적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합니다. 그러나 비전은 우리를 지으신 존재목적을 알고 그것을 실현해 드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로 예배자로 서게 하는 위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만 있으면 우리는 믿음 유치원에서 예배만 드리고 기초적인 삶만 영위하는 사람으로 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비전은 우리로 하여금 예배를 감격적으로 만듭니다. 비전은 믿음 유치원을 졸업하고 청장년이 되어 하나님께서 맡기신 군인과 기업인으로 각자가 부여받은 비전 영역에서 역활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이 때드리는 예배는 마치 군인이 전선에서 피튀기는 전투를 하다가 본부에 돌아와 안식하며 병치료도 받으며 새 전략과 새 무기를 공급받는 것입니다. 믿음 유치원에서 율동과 더불어 드리는 예배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죠.
비전 멘토링 칼럼, 지금까지 [예수님의 복음_하나님 나라 이민 국적자로서의 삶과 죽음 1] 이라는 제목으로 막연한 신앙생활을 예수님의 단순하고 심오한 복음인 하나님 나라의 귀화와 이민의 삶의 관점에서 살폈습니다.
그간 신앙 생활이 어려우셨나요? 어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유는 미국에서 혹은 한국 국적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며 미국과 한국의 삶을 중심으로 살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신앙 생활을 부수적으로 하려니 어려울 수밖에 없지요. 우선 순위를 바꾸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 국적자로서 미국 혹은 한국 혹은 기타 나라에 보내심을 받은 사람으로서의 비전과 사명감을 가지고 살지 않으면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주에 계속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