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멘토링 칼럼 96

96. 사순절특집 5 버림받은 자가 누리는 기쁨의 비전

샬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비전 멘토링 칼럼 오늘은 버림받은 자가 누리는 기쁨의 비전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여러분,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만약 여러분들께서 위대한 영웅적인 일을 하시고 순직, 순국, 혹은 순교하시고, 그런 과정에서 위대한 유언들을 했는데 여러분의 전기를 기록한 작가가 고작 하찮아 보이는 말만 기록했다면 여러분 기분은 어떠하시겠습니까?

오늘 사순절 특집으로 우리가 살필 말씀이 그런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박혀 인간의 죄를 대속하여 죽으시면서 일곱마디 말씀을 하십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십자가의 7언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누가복음 23:34)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누가복음 23:43)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 (요19:26-27)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태복음27: 46, 마가복음15: 34)

내가 목마르다. (요19:28)

다 이루었다. (19:30)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눅23:46), 아멘.

 

누가와 요한은 예수님의 말씀 중 위대해 보이는 3마디씩 기록하는데 마태와 마가는 오직 한 마디를 기록합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입니다. (마태복음27: 46, 마가복음15: 34)

버림받았다고 투정하는 것 같은 말씀입니다. 하필… 고작 한 말씀을 기록하면서 도대체 어쩌자고 이 말씀을 기록했을까요? 이 말씀을 읽은 한 스님이면서 불교대학의 교수님이신 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가 드디어 십자가에서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버림받은 것을 한탄한다고 비판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러한 예수님이 황당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가 보기에 더 황당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그런 황당한 예수를 따르는 기독교인들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이 스님 교수님의 질문에 무엇이라고 답하시겠습니까? 이쯤에서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이 구절 하나만 기록한 마태와 마가의 이유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말씀 중 한 마디를 기록하면서 어쩌자고 다른 영웅적인 말씀들을 다 놔두고 이런 이상한 말씀 하나를 기록함으로 이런 스님 교수님이 이런 공격을 하도록 했을까요?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는 놀라운 반전을 발견합니다. 마태와 마가는 이 한 말씀이면 예수님의 영웅적인 삶과 영웅적인 죽음을 충분하게 대변해 준다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아사셀 염소의 버림 받음

            이 암호같은 비밀을 풀기 위하여는 구약에서 아사셀 염소에 대하여 알아야 합니다.

레위기 16: 21-22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무인지경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 네, 아사셀은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광야에서 대속의 죽임을 당하는 염소입니다. 광야에서 놓임을 받은 염소는 곧 들 짐승의 밥으로 죽어 가는 것입니다.

 

반전

즉, 마태와 마가는 유대 전통을 중요시 여기며 유대인 독자들을 위하여 복음서를 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사셀 염소가 성 밖에서 죽음으로 이스라엘이 정결케 됨을 예수님의 버려짐을 통하여 전달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마태와 마가는 이 버려짐으로 오는 구원 하나면 예수님의 삶과 죽음의 참된 의미가 다 설명이 된다고 보았습니다. 즉, 허접한 말씀 하나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그들은 십자가의 7언 중 이 말씀이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성경의 영적 비밀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 말을 표면적으로만 이해하여 예수님께서 드디어 메시아 콤플렉스에서 깨어나 자신이 허튼 인생을 살고 허탄하게 죽는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영적 진리를 모르는 이가 자신의 무식을 자랑하는 것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영원을 같이하셨던 하나님께도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3년반 동안 동거동락하시면서 모든 것을 다 주셨던 제자들에게도 버림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런 실제 상황을 한 마디로 표현하신 것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입니다.

 

십자가의 고통

여기에서 또 다른 반전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배신감 속에서 외로움과 괴로움 속에서 한탄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십자가가 어떤 상황입니까? 십자가 상황은 못 세 개로 모든 몸이 찢겨지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에 비명과 욕설밖에는 할 수 있지가 않습니다. 뇌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비명과 욕설을 해야 그나마 뇌가 느끼는 고통을 덜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에 매달려 극도의 고통을 받으면 사고가 제대로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단발마적인 비명을 지르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두 강도에게서 보는 것이고요.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시를 읊조리셨습니다. 이것은 뇌가 실제로 이렇게 작동할 수 없는 것을 하신 것입니다.

 

고통속에 읊조리신 시

예수님께서 읊조리신 시는 다윗의 시편 22장 1절이었습니다. 이것이 말해주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시편 22장 1절을 읊조리심으로써 실제 자신이 인간의 죄로 인해 실제로 버림받은 것을 선포하신 것이고, 둘째, 시편 22장 1절을 읊조리심으로 우리에게 시편 22장을 가서 보라는 것입니다. 시편 22장은 고통의 언어로 시작하지만 예수님의 버림받음이 어떤 열매를 맺는지를 말해주는 시편입니다.

시편 22:27은 이렇게 말합니다.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아멘]

예수님께서 시편 22장 1절을 십자가에서 읊조리심으로 십자가가 완성할 비전이 바로 이것이라는 것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시편 22장을 가서 읽어 보고 그 열매를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세

우리가 예수님의 이 말씀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감사한다면 우리가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또 사역을 하면서 때로 버림받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아무도 몰라주고, 오히려 오해하고, 오히려 방해합니다. 오히려 핍박합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때 이 말씀을 되뇌이십시오. 입술로 시편 22장 1절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를 되뇌시고 시편 22장 27절의 비전을 품으십시오. 순수하게 고통받으시고, 비전을 보며 의를 이루십시오. 비전으로 받은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삶에서도 시편 22장의 결론의 복을 받으실 것입니다. 이때 여러분들께서도 십자가의 고통이 아니라 십자가의 희열을 누리실 수 있을 것입니다.

 

비전 멘토링 칼럼 오늘은 버림받은 자가 누리는 기쁨의 비전이라는 제목으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말씀의 비밀을 묵상해 보았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저의 책 크로스 코드에서 살피실 수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우리 주님 너무 자랑스럽죠? 너무 감사하죠? 너무 좋지요? 여러분들도 이제 이 비밀을 소유하셨으니 악을 악으로 갚지 않으시고, 고통과 고난 속에서도 주님 주신 비전 붙잡으시고 승리하실 수 있겠죠? 이 복음, 기쁨의 소식을 사시고 널리 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능력을 주신 주님을 찬양하고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