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고난절의 시작을 맞이하여 수의와 수건이 증거하는 피묻은 복음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이제 코로나니 무엇이니 하는 세상의 모든 복잡한 것을 다 내려놓고, 예수님의 단순한 십자가, 예수님의 보혈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십자가 보혈이 코로나와 우리의 모든 걱정과 죄악을 담당하고 우리를 구원하시기에 넉넉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예수님의 수의와 수건을 통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요한복음 20장 7절은 다음과 같이 매우 특별한 것에 대하여 말합니다.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아멘.
여러분, 그런데 이 수건과 세마포가 현대에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세마포는 이태리 튜린이라는 도시에 성 요한 성당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스페인의 오비에도라는 도시 성당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간 세마포에 대하여 들으셨다 하여도 가짜라고 들으셨을 것입니다. 근거는 1978년 아리조나, 취리히 그리고 옥스포드에서 시행한 탄소 연대 측정에서 1260년에서 1390년의 것이라는 측정치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선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 수의와 수건은 진실로 예수님의 것들인가?
- 만약 그것이 진실이라면 우린 왜 몰랐는가?
- 그것이 예수님의 것이라는 증거는 무엇인가?
- 그것은 우리에게 오늘날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것들에 대하여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수의와 수건은 진실로 예수님의 것들인가?
답은 예입니다. 저는 2008년에 크로스 시크릿이라는 책을 통하여 이것들을 철저히 조사하고 출판하였기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명감을 가지고 이것을 증거합니다.
수의는 폭 1.1미터, 길이 4.1미터로 예수님을 앞뒤로 쌌던 것입니다. 수건은 세로 56.6, 가로 85.5 센티미터의 길이로 시신의 머리에 둘렀고 입에서 나오는 피와 물을 막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왜 1978년에 한 탄소연대 측정치가 1260-1390년으로 나왔을까요? 이유는 사실 간단합니다. 1530년 로마 제국의 찰스 5세의 섭정자였던 그의 신실한 고모 오스트리아의 마거릿은 조카에게 자신의 관에 예수님 수의의 조각을 넣어 달라 유언했습니다. 그후 작은 조각이 잘려졌고 그 부분은 새로운 천으로 메꾸어졌고 색칠을 입었습니다. 1978년 수의의 탄소 연대 측정을 위하여 하필이면 이 기운 부분의 옆에 천을 잘랐습니다. 1세기의 천과 16세기의 천이 섞인 부분을 조사했으니 결과가 1260-1390년으로 나올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훗날 학자들이 이것을 밝혔지만 이미 수의는 가짜라고 대서 특필된 후였습니다.
그것이 진실이라면 우리는 왜 몰랐을까요?
우선은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가짜로 보도된 이후로 매스컴이 이에 대한 진실성을 밝히려 하지 않았고, 수의를 소유한 가톨릭들도 적극적으로 재검사를 하거나 해명하려 하지 들지 않았습니다. 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것이 예수님의 고난의 흔적을 담은 복음서의 거울이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에 대해 가톨릭에서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으니 별로 관심을 쏟지 않았고, 개신교도들은 의심 많은 도마처럼 잘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개신교의 특성상 말씀만 있으면 되지 라는 생각으로 크게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세번째, 그렇다면 그것이 예수님의 것이라는 증거가 있는가?
이 수의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말한 것과 같이 복음서의 거울 역할을 합니다.
마태복음 27장 26절에서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한것과 같이 채찍질 당하신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십니까? 그 채찍은 가죽이었고, 채찍 끝엔 동이 매달려 있어서 채찍을 맞을 때 마다 살점이 따라 나왔습니다. 그리고 채찍 자국은 어깨, 엉덩이, 가슴과 배, 허벅지등 전반에 120여 차례 맞으신 것을 보여줍니다. 그 고통, 누구 때문이었을 까요?
마태복음 27장 29절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웠다 한 것과 같이 수의와 수건은 가시들에 의하여 구멍난 흔적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가시에 찢겨 머리에서 피가 나는 흔적을 보여줍니다. 누구 때문이었을까요?
마태 복음 27장 30절에서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함과 같이 수의는 오른 쪽 눈이 부어 오른 상처와 코가 부어 오른 흔적을 보여줍니다. 누구 때문이었을 까요?
요한복음 19장17에서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라고 했는데 수의와 수건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가면서 생긴 목뒤 뼈가 튀어나온 부분과 어깨가 짓눌려 까진 상처를 보여줍니다. 누구 때문이었을까요?
마태복음 27장32절에서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웠더라”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다 힘들어 넘어지고 하니까 시몬에게 십자가를 지게 합니다. 수의는 예수님의 무릎의 상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구 때문이었을까요?
마태복음 27장35절에서 “저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하는데 수의는 예수님의 손에 못 박힌 흔적, 그리고 피가 팔꿈치 쪽으로 흐른 각도와 발에 못자국을 고스라니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구 때문이었을까요?
요한복음 19장34절에서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함과 같이 수의는 오른쪽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나온 흔적을 구분하여 보여줍니다. 누구 때문이었을까요?
요한복음 19장39절에서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함과 같이 수의에서는 몰약과 침향을 만들기 위하여 썼던 향품 식물들의 흔적을 보여줍니다. 누구 때문이었을까요?
수건은 예수님의 사후의 참혹함을 기록하여 줍니다. 이 수건은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가도 좋다는 빌라도의 명을 받은 즉시 십자가의 예수님께 올라가 입에서 지속적으로 흘러 나오는 피와 물을 막으려고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입안에 수건을 넣은 흔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덤에 옮긴 후 수건은 벗겨져 잘 개어 놓였고, 그 다음 넓은 수의를 예수님의 몸 아래에 펼치고 몰약과 침향을 온 몸에 부었습니다. 그리고 앞을 덮었습니다.
예수님의 수의는 실로 신비하기 그지없습니다. 더 자세한 것은 책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자, 이런 고난의 흔적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모두 나 때문이었습니다. 나의 죄 때문이었지만 그러나 긍정적으로 말하면 나를 구하시기 위하여 였습니다.
여러분 코로나로 인하여, 사업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신분과 관계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얼마나 어려우십니까? 울고 싶고, 죽고 싶을 정도로 극도로 어려운 분들도 계실 수 있습니다. 왜 이것을 허락하셨을까요? 정답은 이 코로나, 이 사업, 이 재정의 십자가로 인하여 철저한 회개, 철저한 비전에 근거한 사명의 삶을 통한 부활을 주시기 위하여 입니다.
여러분 이 어려움의 시간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대신 “이 또한 완성되리라”고 말하십시오. Visionmentoring.org에 오시면 이 시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절대로 아무것도 그냥 지나가게 하시면 안됩니다. 지금 경험하는 이것을 주신 주님의 뜻을 헤아려 아시고, 그 뜻을 완성하신후 보내셔야 합니다. 그것이 완성이 안된채 그냥 지나가면 내 삶에 유익이 없습니다.
이쯤에서 우리는 Clean hands for Corona, but Pure Heart for Christ라는 모토로 코로나와함께 온 고난절을 완성하시길 간구합니다. 특별히 주님 못 박히신 금요일 아침 9시부터 무덤에서 부활하신 주일 새벽까지 금식하시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금식하시면서 개인과 가정, 직장과 교회, 코로나의 현실, 그리고 한국, 미국의 정치, 선교지를 위하여 간절하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이루시려는 비전을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온전히 파악하고, 사명을 감당하심으로 지금 직장으로 삼은 비전의 현장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비전 멘토링 칼럼, 오늘은 고난절의 시작을 맞이하여 수의와 수건이 증거하는 피묻은 복음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샬롬, 승리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