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멘토링 칼럼 78

78. 4단어로 살피는 창세기 1장의 진실성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비전 멘토링 칼럼 오늘은 4단어로 살피는 창세기 1장의 진실성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저는 비전 멘토링을 통하여 각 개인과 단체가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찾게 돕고, 멘토와 더불어 그것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것의 성경적 근거와 방법론을 위하여 기도했고 감사하게도 놀라운 비밀들을 성경에서 발견하면서 우선적으로 그것을 알릴 시리즈의 책들을 쓰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드릴 내용도 그 책들 중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창세기 1장은 천지창조와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하나님의 비전이 선포되는 중요한 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리를 안 믿고 못 믿는 사람들이 가장 혼돈스럽게 만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사실 창세기 1장은 믿는 분들도 그냥 믿는 거지 솔직하게 이해는 안 된다라고 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목사님들도 “성경은 지식적으로 이해하려면 안 된다. 그냥 믿어라” 라고 말씀하시는 경우도 많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은 신학자들입니다. 신학자들은 창세기 1장이 이해가 안되니까 다음과 같은 궤변 이론을 개발했습니다.

“창세기 1장의 창조 이야기는 실제로 그렇게 일어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신앙 고백적인 것이다. 신앙 고백적이니 진실이라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창조자라는 것을 고백하는 차원에서 문학적인 창작품일 수 있다” 라고 주장합니다.

또 창세기 1장은 실제 창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물들의 기능, 특별히 지구가 예배를 드리는 성전적 기능이 되는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라고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창조이야기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 실의에 빠진 백성들의 신앙을 고취하기 위하여 당시 근동의 여러 신화를 참조하여 재구성한 이야기라고 주장까지 합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창세기 1장의 창조 이야기가  솔직히 이해가 안 되고, 못 믿겠다는 것에 근거합니다. 그러니 나름 학자라는 사람들이 뭔가 설명은 해야 하겠으니 성령에 감동된 신학자가 아니라 여러 창조 설화를 문학적으로 읽고 비평하는 문학 비평가의 소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께 창세기 1장은 인간의 창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드릴 수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증거 들이 있어서 저는 창세기 1장 만을 가지고 지금 400페이 분량의 책을 썼습니다. 훗날 읽으시면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그리고 성경의 진실성에 기뻐하시고, 놀라실 것입니다.

오늘은 그 중 네 단어를 가지고 창세기 1장의 진실성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네 단어들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하나님, 우리, 창조, 그리고 만들다입니다.

 

먼저 하나님과 우리라는 단어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라고 쓰인 히브리 단어는 엘로힘입니다. 엘로힘은 위대한 하나님들이라고 번역해야 합당합니다. 엘로힘은 신을 뜻하는 엘라의 복수형입니다. 즉, 신들, 그런데 크고 위대한 신들이라는 뜻입니다.

또 흥미로운 것은 그 하나님께서 자신을 소개할 때 “우리”라는 복수형을 쓰신 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를 하시면서 창세기 1장 26절에서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고 말씀하실 때 사용하셨습니다. 또한 부수적으로 창세기 3장 22절에서도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라고 표현하십니다. 하나님을 복수형 호칭으로 부르고, “우리”라는 대명사로 부르는 것은 사실 매우 어색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에 대하여는 여기까지 살피고, 이제 창조하다와 만들다는 단어에 대하여 살피겠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때 창조하다는 히브리어는 “바라” 입니다. 이 바라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뜻을 가지며 구약에서 오직 하나님의 창조행위를 표현할 때만 썼던 단어입니다. 즉, 인간이 창조하다 라고 쓸 수 없었던 단어입니다. 그런데 아십니까? 창세기 1장에서는 바라 외에 만들다 라는 뜻의 단어 아싸가 사용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에는 사실 놀라운 비밀들이 있습니다. 그 비밀들에 대하여는 다음 기회에 말씀드리기로 하겠습니다.

이 네 단어들이 어떻게 창세기 1장의 진실성에 대하여 말해 주는 것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만약 모세나 어떤 다른 경건한 유대인이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신앙 고백을 하기 위해 창작한 것이라면 저자는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 즉, 엘로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엘로힘은 하나님들이라는 복수형이기 때문에 유일신관을 가졌던 유대 신앙관과 일치 하지 않습니다. 무슬림 교도들이 사용하는대로 유일신인 알라를 사용하는 것이 합당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로힘이라 지속적으로 쓴 것은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즉, 창세기 1장은 유대인들의 창작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둘째, 만약 모세나 다른 경건한 유대인이 창세기를 창작한 경우라면 절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자신을 “우리”라고 표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미 위에서 살핀 것과 같습니다. 유일하셔야 할 하나님을 우리라고 쓴다면 자신들의 신학과 정 반대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우리라고 하나님의 정체성을 쓴 것은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즉, 창세기 1장은 유대인들의 창작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셋째, 만약 모세나 다른 경건한 유대인이 창세기를 창작한 경우라면 그들은 이렇게 “바라”와 “아싸”를 혼돈스럽게 쓸 이유가 없습니다. 창조자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하여 적절한 단어는 “바라”입니다. 그래서 만약 창작했다면 창조자 하나님을 강조하기 위하여 바라만 사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두 단어를 사용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창세기 1장은 인간의 창작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넷째, 만약 모세나 다른 경건한 유대인이 창세기를 창작한 경우라면 그들은 위에서 언급한 이런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후대에 성경을 복사하고 또 하는 것이 직업인 서기관들이 쉽게 고쳐 쓸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 원본 복사가 직업이었던 서기관들은 이러한 네 단어의 혼돈을 그냥 유지했습니다. 아니 고칠 수 없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고 모세가 직접 기록한 것이라고 믿었기에 한글자라도 고치면 안 된다고 대대로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혼돈스럽지만 하나님께 대한 경의를 표현하는 모세와, 그런 모세의 글에 경의를 표하는 성경 원본 복사자들의 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즉, 창세기 1장은 인간의 창작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해주는 것은 창세기 1장의 기록의 진실성입니다. 창조의 진실성에 대하여는 다음 기회에 나누어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비전 멘토링 칼럼 지금까지 4단어로 살피는 창세기 1장의 진실성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여러분,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의 비전에 대한 너무나 놀라운 비밀들이 담겨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1장의 창조에 대하여 무지함으로 청소년들과 성도들이 과학시간에 바보가 되도록 방치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고쳐야 합니다. 모쪼록 진리를 알고 당당하게 승리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