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멘토링 칼럼67

67. 천덕꾸러기 기독교와 세개의 십자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비전 멘토링 칼럼 오늘은 “천덕꾸러기 기독교와 세개의 십자가”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코로나가 한국에서 위험성이 인지된 것이 2020년 1월, 이제 8개월째입니다. 그런데 코로나와 연관된 교회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해 가는 모습입니다. 코로나가 퍼져가던 2-3월에 코로나와 밀접한 연관어들은 중국, 우환 그리고 폐염, 마스크, 사회적 거리 두기였습니다. 그리고 빠지지 않았던 것이 신천지였습니다. 신천지라는 기독교 이단이 이단 짓을 하면서 사회의 이단아 역할을 하였고, 그들의 모임을 근거지로 인하여 코로나가 확산되었다는 비판은 합당해 보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코로나는 신천지에 대한 정체를 만천하에 드러내게 하였고, 법적인 제제를 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단 신천지와 이물질인 코로나가 만나 악이 함께 소명해 가는 선한 열매를 거둔 셈입니다. 이번 기회에 신천지에 미혹되었던 사람들 중에서 교회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있게 된 것은 코로나가 준 뜻 밖의 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8월 중순 이후 우리는 코로나와 밀접한 연관어로 다시 한번 교회를 듣게 되었습니다. 8.15 광복절 태극기 행사, 사랑 제일 교회, 전광훈 목사 등이 주요 연관어들입니다.

전광훈 목사 그리고 그를 지지하는 목회자들과 성도들을 가장 순수한 측면에서 보자면 투철한 신앙심과 애국심입니다. 신앙적으로는 차별금지법을 통하여 악을 악이라고 말하지 못하게 자갈을 물리려는 현 정부의 비성서적인 견해를 비판하고, 교회가 깨어서 기도하도록 촉구했습니다. 애국적으로는 교과서에서 북한을 미화하고 이승만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의 정통성을 무시하며 사사건건 사회주의, 공산주의 모델로 나아가며, 그것을 하는 과정을 비 민주적인 방법으로 행하는 듯하는 현 정부에 대한 세례 요한 적인 행동일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의 행동 방식은 그들의 순수한 동기를 모두 쓰레기 통에 쏟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유는 그들의 비합리적인 사고와 행동 때문입니다. 지금 사회가 보는 그 집회의 결론은 그들의 선지자적 외침이 아니라 그들이 숙주가 되어 옮기고 있는 코로나의 위험성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대변하는 이미지는 행동하는 양심과 신앙이 아니라 반정부주의자, 극우, 수구꼴통, 반사회적, 비과학적, 맹신, 과격분자입니다. 집회 주최측에서는 하나님을 믿으면 코로나에 안 걸린다거나, 방역에 협조하면 블랙리스트에 올라가니 하지 말라거나 하는 거짓 뉴스가 횡행하고 있다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정말 역병에 안걸릴까요? 아멘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믿으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반토막만 주장하면 큰일 입니다.

출애굽기 15:26에서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아멘입니다.

이 말씀은 구구절절이 그대로 알고 믿고 행하여야 말씀의 효력이 생깁니다.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는 말씀이 삶 가운데 참이 되려면 그전에 하신 말씀을 행하여야 합니다.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즉, 하나님 말씀의 순종, 의를 행함, 계명에 귀 기울이고, 모든 규례를 지키는 것입니다. 이 규례 중엔 레위기에서 최초로 제시된 병자와의 사회적 거리두기의 위생 규례 및 다른 위생 규례도 포함됩니다. 이러할 때 역병에 걸리지 않고, 걸려도 치료하십니다.

마가복음 16장에서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이 말씀은 성령님의 뜻을 따라, 성령님의 방법으로 행하는 사람들의 특성을 말해 줍니다. 성령의 뜻을 성령의 방법으로 행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그 사람은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질문은 이렇습니다. 과연 우리의 집회들은 성령의 열매를 맺음으로 생명의 기쁨이 넘칩니까? 아니면 죽음의 전파자가 되고 있습니까?

지금까지 살핀 이러한 말씀은 행동하는 양심으로 행동하는 신앙으로 거리에 나가신 분들의 고귀한 뜻을 비하하고, 비판하려는 것이 전혀 아님을 알아주십시오.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어찌 행동하고 대처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통렬한 반성으로 들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을 걸고 모이는 모든 모임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기준 안에서 행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 부분이 있기에 일부 교회는 반 방역적 주체로 인식 되면서 국민들에게 천덕꾸러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각각 다른 3개의 십자가를 연상시킵니다. 이 3개의 십자가를 통하여 현상을 분석하고 대안을 찾아 보겠습니다.

잘 아시는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거기엔 모두 세개의 십자가가 있었고, 세 명의 사람이 같은 날, 같은 재질의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세명은 모두 다른 운명을 맞이합니다. 무슨 차이가 있었을까요? 같은 십자가였지만 십자가를 지는 비전과 방식이 달랐던 것입니다.

첫번째 십자가는 육체와 영혼을 함께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그 십자가의 주인은 십자가 죽음의 고통가운데 악에 차서 비명 지르고, 욕하고 저주했습니다. 혹시 가정에서, 당회에서, 광화문에서 악을 미워한다 하면서 악으로 악을 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두번째 십자가는 육체는 죽었지만 영혼은 낙원에 간 것입니다. 그 주인은 처음에는 십자가 죽음의 고통 가운에 함께 비명 지르고, 욕하고 저주했지만 그 후에 예수님을 보면서 깨닫고 낙원에 갔습니다. 우리가 이전에 악으로 행하였다 하더라도 이제라도 돌이켜서 주님께서 모범을 보이신 대로 행하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어떤 모범을 보이셨을까요?

세번째 십자가는 육체는 잠시 죽었지만 부활하셨고 믿는 모두를 넉넉히 살리시는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같이 못박혀 살이 찢기는 고통 속에서도 두 강도처럼 고통 속에서 욕과 저주를 하지 않고, 오히려 용서하십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자신의 사명의 완성을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사랑에 가득 차서 오래 참으시고 양선하시며 온유하고 절제하심으로 성령의 열매를 거두시면서 십자가 사명을 완수하십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십자가 형을 집행한 로마의 백부장이 마가복음15:39에서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합니다.

광화문 집회든 또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모범을 따라 행하여야 합니다. 즉, 어젠다, 프로파겐다, 메세지가 아니라 그것을 외치는 메신저의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메신저의 가치는 성령의 열매를 맺었는가로 평가됩니다. 일본의 간수를 감동시킨 세례명 토마스 안중근 의사와 그의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는 이에 대한 좋은 예 입니다.

이러한 자세는 한국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지켜져야 할 소중한 가치입니다. 특별히 기독교 가치와 기치를 내세우고 나아가는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우선적으로 지켜져야 할 것입니다. 그는 특별히 기독교 문화와 중국의 전제 정치와 관련하여 일반 대통령이 쉽게 내릴 수 없는 결단을 내림으로 역사를 바꾸고 있지만, 거친 행동 방식으로 인하여 국내와 국제 정치에서 천덕꾸러기가 되었습니다.

비전 멘토링 칼럼 지금까지 “천덕꾸러기 기독교와 세개의 십자가”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모쪼록 예수님의 가치에 따르는 가치 있는 삶을 살므로 세상의 천덕꾸러기가 아니라 천덕, 하나님의 덕을 선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