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비전 멘토링 칼럼 오늘은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배우는 위기 극복법2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에 역사가 어떻게 반복되는지를 살폈습니다. 그 반복의 중심에는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역사의 주인이시니 당연합니다. 그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교회를 부흥시켜 주신 후에 성도들을 흩으셨습니다. 그리고 72년에는 로마의 디도 장군을 보내서 아예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셨고, 성궤는 실종되게 하셨습니다.
서기 999년에는 유럽 사람들이 미신적 종말론에 사로잡혀서 주님께서 오실 것이라고 기대했다가 오시지 않자 혼란에 빠졌습니다. 이어서 십자군 전쟁, 100년 전쟁, 30년 전쟁이 유럽을 휩쓸었고, 또한 사람이 종기로 인하여 몸이 검게 썩어 가면서 죽는 흑사병이 휩쓸었습니다. 그러면서 영적 침체가 더 깊어졌습니다. 예수님의 resurrection 대신 그리스 로마로 돌아가는 renaissance를 추구했습니다. 당시 교회였던 로마 카톨릭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갔어야 했는데 그들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성도들에게는 청빈과 검소한 삶을 강요했지만, 사제들의 삶은 그렇지 않았고, 그들의 성당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교회 건축 비용을 충당하기 위하여 면죄부를 팔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1517년 종교개혁을 통하여 그 타락한 성전에서 성도들을 빼내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루터의 종교 개혁이 500년 지난 현재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다시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교회에서 흩으시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우리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삶은 코로나로 인하여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된 상황입니다. 그럼 우리의 질문은 하나님께서 도대체 왜 성도들로 하여금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선 우리가 이번 코로나 사태를 통해서 강제적으로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모든 성도들이 다 모여서 예배를 드리지 않을 수 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공산당 군인들이 총을 가지고 와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했었으면 순교를 하면서 까지 교회에서 예배를 못드리게 하는 것에 대항 했었을 텐데 이번에는 아무도 그렇게 순교를 하면서까지 교회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순수하게 수용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런 때는 예배를 차선책으로 온라인으로 드려도 되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한때 가정교회 현상을 이단취급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가 오니까 그때 가정에서 모이는 것은 교회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던 사람들 중 아무도 가정 예배와 온라인 예배에 대해 이견을 주장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것이 말해주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간 우리는 교회 중심, 예배 중심, 설교 중심의 삶을 중시여기며 신앙 생활을 했던 것들을 질문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성령님의 인도하심 안에서 너무나 중요한 것들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강조하고 그렇게 산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강조하면서 간과된 다른 중요한 것들을 이제 돌아 보아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모여서 성도 모두가 목소리 높여 찬양을 드리고, 말씀을 들으며 울고 웃고, 도전 받는 것이 얼마나 그립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이번 기회에 강제적으로 알게 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건물이 교회가 아니라는 것, 성도들 각자가 부르심 받고 빼냄을 받은 교회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이론적으로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 말 뜻을 삶에서 진정으로 적용한 교회는 많지 않았었던 것이지요.
이번에 알게 된 것이 성경을 어떻게 이해하고 믿는가에 따라서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 같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핍박이 오고, 교회에서 모일 수 없는 일이 올 수도 있으니 대안으로 성도들이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신앙을 지킬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믿고 준비했던 사람들의 교회는 지금도 전혀 흔들림없이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도들 한 명 한 명의 능력과 가능성을 믿고 그들이 평신도 목사로서 소그룹을 주체적으로 인도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달고, 열매는 풍성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그간 한국을 포함한 많은 교회는 그렇게 비판해왔던 종교개혁 전의 카톨릭과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 있었지 않았는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 이제 교회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가야한다.
- 마태복음 28장 18절은 와라가 아니가 “가라”고 하신다.
- 교회가 아니라 비전의 현장이 강조되어야 한다.
- 그간 교회 중심 프로그램이 어느 부분 도움이 되었지만 이것은 교회 담을 넘지 못했다. 사회 각곳이 썩고 있는데 오히려 크리스천들이 함께 썩게 했다.
- 목사가 아니라 모든 성도가 주인공이 되어야한다.
- 이제는 비전 현장 중심의 프로그램으로 모든 성도들이 자신의 비전 현장을 하나님의 나라로 바꾸도록 주인공화 해야한다.
- 설교가 아니라 멘토링 방식의 제자 훈련이 주가 되어야 한다.
- 교육 내용과 함께 교육 방법에 혁명이 있어야 한다.
- 교육 내용에 신경쓴 이유는 학자들이 현장용이기 보다는 탁상용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교육 내용 연구에 집중하여 조직신학이 발전했다.
- 그러나 현장에 있는 이들은 교육 내용뿐 아니라 교육 방법이 더 중요한 것을 안다. 예수님은 내용과 방법이 다 좋으셨다. 최상의 교육 방법은 비전 멘토링 방식이다.
- 이제 교회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가야한다.
- 실천적 방법
- 비전의 서를 함께 읽어라
- 나의 비전의 서를 통하여 비전을 찾아 주라
- 설교가 아니라 비전 멘토링을 해주라
- 성도가 아니라 비전 멘토로 세우라
- 예수님의 조언-마태복음 28장을 중심으로
- 18절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 비전을 받고, 비전 영역에서 일하라
- 19절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 이 말씀을 제자들 모두에게 주신 말씀이다. 해석은 한 제자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는 것이 아니라, 각 제자가 각자에게 주어진 비전 영역의 민족, 부족, 사람 단위를 제자 삼는 것이다. 그래서 각자의 비전 영역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곳은 타국일 수 있지만 직장 영역일 수 있다.
- 20절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라고 하실 때 우리는 예수님의 복음의 내용만 생각하여 조직신학적으로 가르치려 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킬때는 교육 내용뿐 아니라 교육 방법도 가르쳐 지키도록 해야 한다. 현대 교회와 학교가 간과하는 것이 교육 방법이다. – 예수님의 교육 방법은 비전 멘토링방식이었다. 이것은 비전을 주셔서 가슴 뛰게 하시고, 그 열정을 가지고 비전의 현장에 가서 사역을 배우며 하되, 그 일을 이미 잘 이룬 이에게 멘토링 방식으로 제자 훈련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 20절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는 주님께 은혜를 구하며 나가야 한다.
비전 멘토링 칼럼 지금까지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배우는 위기 극복법 2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모쪼록 종교 개혁적인 발상으로 성경안에서, 진리 안에서, 본질을 생각하며, 궁극적인 비전을 생각하시면서 교회를 교회답게, 성도를 성도답게 만들어 드리는 여러분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