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비전 멘토링 칼럼 오늘은 예수님 시대에 있던 위기와 비전을 통한 극복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코로나 현실
미국내 코로나 감염자가 2020년 7월 11일 현재 전세계적으로 천2백 70만에 육박하고, 사망자는 5십6만3천명으로 치사율 4.45%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감염자가 3백 10만을 넘어섰고, 사망자가 13만2천명대로 치사율 4.2%로 세계 평균보다는 낮지만 감염율은 9.945%로 전 국민의 10%가 감염되어 세계최고가 되었습니다. 미국의 이 수치는 감염이 확인된 경우만 세어진 것으로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에 비하여 한국은 감염자 1만3천4백명대, 사망자 288명, 치사율 2.15%로 매우 모범적으로 대처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생활방역이라는 개념으로 일상을 회복하는 차원에서 접근하면서 감염율이 다시 높아가고 있어서 신경을 곤두서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어느 한곳에 감염자 나타나면 감염자가 있었던 모든 지역의 관련자 모두를 철저하게 검사하여 감염자를 찾아내는 반면, 미국의 경우 폐쇄를 시킬 뿐 검사는 하지 않고 방치를 하기에 무증상자를 통한 감염을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상태입니다.
미국의 안타까운 현실
미국의 정치적 민주주의와 문화적 시민의식, 그리고 의료적 방역제도의 부정적인 치부들이 한꺼번에 드러낸 경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간 미국의 고상하고, 합리적이고, 시스템적이고, 품격있던 모습은 자취를 감추고 정치적으로는 분열하고, 문화적으로는 개인주의적이며, 의료적으로는 시민 생명 존중의 의료보다 여전히 제도적 무기력감으로 실제 방역에 속수무책인 모습으로 마치 죽어가는 공룡을 보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교회의 안타까운 현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면서 교회도 점점 무기력해지고 있습니다. 온라인 예배를 통하여 교회의 결속력이 약화되고 있고, 헌금의 감소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냄비속의 개구리처럼 서서히 영적 무기력감에 마비되어 가지만 깰 생각을 못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양과 염소가 구분되고 있습니다. 양들은 교회를 그리워하며, 예배를 그리워하며 간절하게 회복의 날을 위하여 바빌론 강가에서 눈물의 찬양을 부르던 이스라엘 처럼 간절하게 주님을 찾습니다. 염소들은 점점 시대의 흐름이 주는 사탄의 마취에 취하여 배교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위기 상황
이런 위기는 예수님 당시에도 있었습니다. 이전에 페르시아의 속국으로, 또 바벨론의 속국으로 지내면서 아람어를 배우며 살았던 이스라엘은 그 후에 그리스의 속국으로 살면서 그리스어를 또 배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시절에는 로마의 속국으로 살면서 로마어를 배우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시골쪽 백성들은 히브리어 대신 아람어를 가정에서 쓰고, 학교에서는 그리스어를, 그리고 관청에서는 로마어를 썼어야 했던 혼돈스러운 시절이었습니다. 좋게 이야기 하면 국제화의 시대였습니다.
로마에서 파견된 총독 빌라도는 로마에 대항하는 모든 사람을 잡아 십자가 형에 처했음으로 예루살렘 주변 사람들은 십자가에 매달려 비명을 지르며 몇 일간 고통속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비명소리를 자주 들었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은 정체성의 혼돈을 비롯한 정치, 종교, 문화, 언어의 복합적인 혼돈과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손님이 와도 먹을 것이 없어서 옆집에 양식을 구하러 가지만 그도 역시 넉넉치 못함으로 문전박대하는 일이 많음으로 예수님께서 그것을 예화로 드실 정도 였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를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실제로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이 귀했던 절대적 가난의 시대였습니다. 또한 의료적으로도 문둥병이 많아서 그들은 격리되었고, 그들이 거리를 다니려면 “부정하다”를 외치며 다녔어야 했습니다.
교회의 위기
이러한 이스라엘의 상황은 우리가 코로나로 겪는 시대적, 영적, 경제적, 문화적 혼돈과 과히 다르지 않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미혹당하고, 이성적으로 미혹 당하여 꿈과 희망을 잃고 무기력해진 채 국가로부터 받는 기본소득만을 기다리며 국가의 통제 속에 삶을 통째로 바쳤습니다. 이제 국가가 예배 때 찬양을 드리지 말라면 하지 말아야 하고, 100명 이상 모이지 말라면 그리 해야 합니다. 물론 방역차원에서 조심할 것은 당연히 해야하고, 그런 차원에서 정책들이 수립되는 것은 따라야 합니다. 문제는 교회가 영성과 진리적 합리성에 근거한 주도성을 상실하고, 상실한지도 모른채 끌려 다니고 있는 실상입니다.
성경적 대안
성경은 레위기를 통하여 위생을 어찌 관리해야 할지를 3500년전, 바이러스와 전염병의 개념을 모를 때 하나님의 지혜를 통하여 기록했습니다. 이러한 위생 관념은 14세기에서 17세기까지 만연하여 유럽인구의 반을 죽였던 흑사병 때에 유대인들에게 효력을 발휘합니다. 나갔다 오면 손과 발을 씻고, 죽은 동물들을 묻고, 그릇들을 엎어 놓고 하는 것들이 유대인들을 만연한 전염병에서 구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유대인들이 죽지 않자, 흑사병을 유대인들이 퍼트렸음으로 그렇다고 생각하고는 유대인들을 핍박하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위기 대안
자, 그렇다면 교회가 어떻게 이 시대를 주도해야 할까요? 방법은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영의 하나님, 혼의 하나님, 육의 하나님, 위생과 건강과 생명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간 신약의 영적인 것에 집중함으로 구약의 좋은 전통을 등한시 했던 것에서 돌이켜서 구약을 통하여 주신 귀한 지혜들도 활용할 수 있는 삶의 신학을 개발하고 적용해야 합니다. 그냥 기도만 하면 위생이 처리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손을 닦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위기의 시대에 이스라엘에게 비전을 제시하셨습니다. 비전을 제시하심으로 혼탁하고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이스라엘에게 위기를 본질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비전은 크게 두 방향입니다.
첫째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비전을 누릴 수 있기 위해 감당할 사명으로는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마태복음 4장 17절을 통하여 확인하게 됩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마태복음 4:17,
이것은 현대의 우리 교회들도 매우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개개인들에게 구별된 비전을 주시고, 그들이 그 비전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 예를 마태복음 4장 19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마태복음 4:19,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면서 먼저 사람 낚는 어부가 되는 비전을 제시하시고, 제자들이 감당할 사명으로 나를 따라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때 제자들은 예수님의 그물을 오른쪽으로 내리라는 말씀을 통하여 밤새 못잡았던 엄청난 숫자의 고기를 잡은 이후였기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께서 자신들에게 주신 비전에 가슴 뛰면서 배를 뒤로 하고 기쁘게 예수님을 따릅니다.
교회의 적용
자, 여기에서 결론적으로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하나님 나라의 비전의 중요성입니다. 그곳이 우리의 목적지여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멈추면 안됩니다. 그 나라에 가기 전에, 혹은 그 나라에 도달하기 위하여 주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각자의 가슴이 뛰는 비전을 주셔서 단순히 먹고 사는 일을 할 뿐 아니라 그곳을 하나님 나라로 만들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없는 것이 이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주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가슴떨리는 비전을 깨닫게 하지 못함으로 성도들은 막연하게 들리는 하나님 나라의 비전에 식상하여서 천천히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이런 상황에서 깨어 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위기 속에 있는 각 도시를 돌면서 사람 낚는 어부의 비전을 함께 나눌 사람들을 찾으셨고, 그들이 먼저 일꾼이 되도록 멘토링 방식으로 제자훈련을 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시대에 따라야 할 방식입니다. 결론은 어려울 때를 이길 힘, 그것은 성경에 있고, 예수님의 비전과 멘토링 방식의 제자 훈련에 있습니다.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비전을 받으면 이것의 실현을 위하여 목숨을 거는 삶이 이어지기에 믿음위에 비전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비전 멘토링 칼럼 오늘은 예수님 시대에 있던 위기와 비전을 통한 극복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모쪼록 이 시대를 이길 힘과 방법을 주님 안에서 찾으시고 세상을 주도해 나가는 교회와 성도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