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비전 멘토링 칼럼 오늘은 성령님의 비전 멘토링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이전에 우리는 과연 비전 멘토링이 성경적인가를 살펴보았습니다. 비전 멘토링이라는 말은 성경에 없지만 비전 멘토를 뜻하는 말은 성경에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말이 무엇인지 기억하십니까? 비전 멘토를 뜻하는 성경적 용어는 신약이 쓰인 그리스어, 파라크레토스입니다. 보호하고 은혜를 베푸시는 뜻의 보혜사로 번역된 성령님의 별명 파라크레토스는 “옆에서”라는 뜻의 파라와 지지, 지도, 인도, 옹호, 변호, 보호라는 뜻의 크리토스의 합성어로, 이것을 종합적인 것을 하는 분을 표현할 가장 적절한 현대어는 비전 멘토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비전 멘토라고 번역된 한국어는 없지만 그리스 원어는 비전 멘토를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비전 멘토시라는 것이고,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비전 멘토링을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비전 멘토링의 조건
그러면 성령님께서 어떻게 우리에게 비전 멘토링을 해 주실까요? 만약 성령님께서 비전 멘토링을 해주신다면 그 증거는 두 가지에서 찾아야 합니다. 먼저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미래의 일을 미리 알려 주셔서 비전으로 받게 해 주셔야 합니다. 둘째, 그 비전의 일을 우리가 실현함에 있어서 우리와 동행하시면서 우리를 인도해 주셔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그렇게 비전 멘토링을 해 주시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스데반에 대한 성령님의 비전 멘토링
먼저 첫 순교자 스데반 집사의 경우를 통하여 살펴보시죠. 성령님께서는 스데반 집사가 예수님과 공유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을 사람들과 나누고 실현하기 위하여 전도자의 삶을 살 때에 그에게 비전을 보여 주시고 또한 동행하십니다. 그가 성령에 충만함에 힘입어 복음을 전할 때 성령님은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6장 8절에서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한다고 하시고
6:10에서는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한다고
또 6:15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7장 55-56절에서는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모두 성령님께서 비전을 주시고, 행하게 하심으로 가능했던 일입니다. 성령님은 스데반으로 하여금 영의 눈을 열여 천국의 현장 상황을 영의 눈으로 보게 했습니다. 이것이 비전입니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 영안이 열리지 않은 사람들은 이것을 거짓된 것으로 여기고 그가 하나님을 팔고, 하나님의 이름을 거짓되게 부른다고 생각하여 그를 잡아 돌로 쳐 죽입니다. 그러나 스데반 집사는 이렇게 자신을 죽이는 자들에게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을 인용하면서 그들을 용서합니다.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사도행전 7:57-60
이와 같이 성령님께서는 스데반에게 열린 천국의 비전과 그곳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와 그 옆에 서서 가슴 아프게 스데반의 상황을 보시는 예수님을 비전으로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스데반으로 하여금 담대하게 자신의 순교자로서의 삶을 완성하게 인도하십니다.
베드로에 대한 성령님의 비전 멘토링
베드로 사도의 경우를 살펴보시죠. 그는 매우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태어나서 한번도 부정한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0:9-23에 보면 성령님께서 그에게 중요한 가이드를 주신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비전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가 기도하려 6시, 오늘날의 정오에 지붕에 올라갔을 때 하늘이 열리며 그동안 유대인으로서 먹지 않았던 것들, ”각종 네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을 보이시며 비전을 주시고 그것을 “먹으라”는 사명을 주십니다. 베드로가 유대 전통에 따라 먹을 수 없다고 하자, 하늘에서는 세번 거듭하여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십니다.
이 비전의 해석은 베드로가 이방인들을 전도할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그가 이방에서 이방의 음식을 먹어야 함을 보여주신 것이었습니다. 이 비전 이후에 곧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로마 사람 고넬료의 집에서 사람이 옵니다. 그들은 그들대로 베드로를 청하여 말씀을 들으라는 천사의 비전을 받고 베드로를 모시러 온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성령님은 베드로와 고넬료에게 각각 비전을 허락하시고, 그 비전을 이루도록 우리에게 비전 멘토링을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바울에 대한 성령님의 비전 멘토링
바울 사도 또한 성령님의 비전 멘토링을 통하여 장래 일을 지도 받은 분입니다. 그는 열심이 특심이어서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를 잡아 옥에 가두려고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예수님으로부터 비전을 받습니다.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사도행전 9:3 그러면서 왜 “나를 박해 하느냐”는 예수님의 책망 섞인 음성을 듣고 앞을 보지 못하게 된다. 그때 다메섹에 아나니아라는 제자는 예수님께서 나타나 바울을 만나도록 하시는 비전을 봅니다. 아나니아는 바울을 만나 예수님께 비전을 받고, 그것을 사명으로 알고 행합니다.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사도행전 9:15-16. 아나니아는 한 때 믿는 자를 핍박했던 바울을 의심하지만 하나님께서 바울에 대한 자신에게 하신 말씀을 실천합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바울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변하고 그는 새로운 비전에 사로잡혀 그동안의 행동과 정반대의 행동, 즉 그가 반대하던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을 합니다. 그러자 그를 파송 했던 유대인들이 이번엔 그를 잡아 죽이려 하나 한번 비전을 받은 바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사도행전 9:22 합니다. 이 모든 일이 가능한 것은 예수님과 성령님께서 먼저 비전을 보여 주시고, 그것을 감당하도록 멘토로서 동행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바울은 자신의 궁극적 사명인 이방에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중 장기적인 사역을 주님께서 주시는 중장기적 비전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 증거 중 하나는 그의 마게도냐 선교입니다. 바울은 이미 마음에 아시아 선교를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함으로 사도행전 16:9 바울은 계획을 수정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님께서는 그의 사명자들에게 비전을 주시고, 그 비전에 근거하여 확신을 가지고 힘있게 사역하도록 도우십니다.
우리에 대한 성령님의 비전 멘토링
성령님께서는 오늘 날에도 물론 꿈, 환상, 계시, 감동, 말씀, 영감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비전을 제시해 주십니다. 또한 우리의 기도를 주관하시고, 인도하시고 응답하심으로 우리에게 가장 지혜롭고 권위있는 비전 멘토가 되십니다. 그러나 조심할 것은 비전이 성령님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인지를 성경 말씀과 궁극적 비전을 근거로 하여 분별해야 합니다.
비전 멘토링 칼럼, 오늘은 성령님의 비전 멘토링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모쪼록 성령님으로부터 비전을 받으시고, 성령님과 동행하시면서 성령님의 비전 멘토링을 통하여 주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심과 같이 여러분의 삶에서 완성하시기를 간구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