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멘토링 칼럼 31

31. No manger, No messiah: 진짜 크리스마스 트리의 비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No manger, No messiah: 진짜 크리스마스 트리의 비전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가짜 크리스마스 트리?

12월이 되면 상가, 가정, 그리고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을 합니다. 잘자란 전나무를 잘라 그곳에 온갖 장식을 하고, 꼭대기에 빛나는 별을 달고 주변에 반짝이 전등들을 두르고, 주고받을 선물을 나무 주변에 배치합니다.

그런데 이 크리스마스 트리가 예수님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요? 성경적으로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크리스마스 트리의 사용은 이집트와 로마에서 풍요의 상징으로 일찍부터 사용하던 민속 전통을 기독교화 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별빛 전구로 대치된 촛불 장식은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께서 크리스마스 이브에 숲에 나갔다가 별이 반짝이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얻어서 시작했다고도 전해집니다. 이 크리스마트 트리엔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습니다.

순기능은 각박한 세상에서 그나마 이 크리스마스 트리는 상록수의 푸르름에 은은한 피톤치드 향기를 주며, 또 가족을 한자리에 모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류에게 선물로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선물을 나누며 감사를 표하게 해줍니다.

역기능은 빛나고, 푸르르고 선물 가득한 풍요를 추구하는 인간적인 욕망을 부추겨 줍니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산타클로스와 더불어 물질적 선물에 집착하게 함으로, 가난하게 오셔서 가난한 자들을 풍요케 하시려 예수님을 잊게 합니다.

그래서 그간 익숙한 이 크리스마스 트리의 순기능은 살려서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고 역기능은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 역기능을 바로잡아줄 진짜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습니다.

 진짜 크리스마스 트리

사실 이 진짜 크리스마스 트리는 사람들이 별로 관심 쏟지 않습니다. 그 트리는 성탄의장면에 유일하게 등장하는 나무입니다. 그 나무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던 마구간에 있었던 구유입니다. 나무로 만든 이 구유가 성경에서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에 등장하는 유일한 나무, 진정한 크리스마스의 트리입니다. 이 나무는 잘려지고, 눕혀지고, 나무통을 긁어내고, 동물들의 먹이로 인하여 냄새나고 더러운 것입니다.

 왜 하필 나무 구유?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필 왜 그런 곳에 누우셨을까요? 사실 이 모든 것은 천국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시는 예수님의 계획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 원하시면 아버지 요셉을 축복하셔서 더 나은 조건을 주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기 보다 요셉과 마리아를 가난하게 하셨고, 유명세도 없고, 영향력도 없게 하셨습니다. 이유는 그것이 이스라엘의 영적, 정치적, 경제적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스스로도 죄와 악으로 가난하게 죽어가는 이스라엘에 오시면서 모든 것을 버리셨습니다.

모순의 구유

그래서 예수님께서 누우신 구유는 모순의 나무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보좌에서 구유에 오시면서 창조주에서 피조물로, 의로운 천국에서 불의 한 지상으로, 우주의 권세자에서 무능력의 상징인 아기로, 하나님의 아들에서 사람의 아들로 오신 것입니다.

구유에 누우신 예수님의 심정

그럼 그렇게 오신 예수님의 심정은 어떠하셨을까요? 비통하시고, 참담하셨을까요? 억지로 그곳에 누우셨을까요? 아마 자신이 거룩하고 존엄하게 창조하고 비전을 주어서 이 땅에 태어나게 한 사람들이 죄와 악에서 신음하는 모습에 비통해 하시고, 참담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억지로 벌 받는 마음으로 누우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의 비전을 새롭게 하시고, 권세와 의를 새롭게 하심으로 회복된 인간들과 지구에 대한 기쁨의 비전을 가지고 계셨기에 그러합니다.

비전은 가슴을 뛰게 합니다. 그런 비전이 있으시기에 예수님께서는 냄새 나는 구유에서 생명의 양식으로, 떡집이라는 뜻을 가진 매정한 마을 베들레헴에서 생명의 떡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 싸우던 참담한 이스라엘에서 유월절 양고기로 가슴 떨리는 비전을 가지고 기쁨으로 오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비전의 사람에게 현실의 고난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비전의 사람은 완성될 복된 미래를 오늘 믿음으로 누리기 때문입니다.

구유의 비전

그러므로 성경적인 진정한 크리스마스 트리는 번쩍이는 별을 달고 현란한 포장으로 선물을 쌓아 놓은 크리스마스 트리가 아니라, 선물로 오신 예수님을 생명의 양식으로 모신 잘라지고, 쓰러지고, 파인 구유였습니다. 이 구유는 예수님의 삶에 중요한 비밀을 품고 있습니다. , 나무로 시작하여 나무로 완성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 잠드신 곳이 나무 구유였고,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잠드신 곳이 나무 십자가였습니다. 태어나실 때는 그나마 나무 구유에 누우셨지만, 죽으실 때는 그나마 눕지도 못하고 나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것이 인간이 예수님을 취급한 방식이었습니다.

비전의 십자가

여러분, 나무 구유가 품고 있는 십자가는 어떤 나무입니까? 모순의 나무입니다. 돌산에서 뿌리도 줄기도 잎새도 없이 붉은 생명 나무 열매를 맺은 신비로운 나무입니다. 이 나무가 유월절의 나무, 패스오버 트리 Passover Tree입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트리, 구유의 비전은 패스오버 트리인 십자가였습니다. 나무 구유는 나무 십자가를 향해 가시는 예수님의 목적지를 가르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진짜 크리스마스 트리가 보이십니까?

 

영어 속담에

No cross, No crown 고난의 십자가가 없으면 영광의 왕관도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에 저는 하나를 덧붙여 말하고 싶습니다.

No manger, No messiah, 겸손한 구유가 없으면 섬김의 구원자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우리들이 진정한 크리스마스 트리에 누우신 예수님을 통하여 도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비전을 받으시고, 비전의 영역에서 예수님을 대리하여 구원자 역할을 하실 사람들이라면 구유에 누우신 예수님의 겸손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명을 감당하면서 오는 고난의 십자가를 마다치 않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면류관을 받겠고, 구원자 주님과 함께 다스릴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어디에서 예수님을 찾고 계십니까?

예수님을 찾을 수 있는 곳은 화려하고 웅장하게 장식되어 우러러볼 수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아니라, 아래로 내려다보아야 하는 낮은 곳에, 가난하고 비천한 모습으로 땅에 눕혀진 구유입니다. 동방박사가 헤롯 궁전에 찾아가보았지만 구주로 태어나신 주님은 그곳에 계시지 않았다. 천사들은 헤롯을 찾지 않고, 목동을 찾았고, 비밀을 아는 목동들은 헤롯을 찾지 않고 구유를 찾았습니다. 이와 같이 비전을 받은 사람들은 그래서 비밀을 아는 사람들은 무엇을 찾아야 할지 알고있습니다.

 여러분, 오늘은 No manger, No messiah; 진짜 크리스마스 트리의 비전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우리 주변엔 오늘도 변변한 것이 없이 가난한 마음으로 구원과 구원자를 찾는 이들이 있습니다. 마음 편하게 대화할 사람도 찾습니다. 함께 가난하여 큰 선물을 주지 못하고, 방을 내어드릴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들에게 손 내밀어 주시고, 눈 맞추어 드리시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시면서 예수님께 방을 내어드리는 심정으로 그들을 만나 주시면 어떨까요?

No manger, No messiah; No cross, No crown를 기억하시면서, 행여 성탄절과 연말 연시의 바쁜 손님 치례 때문에 예수님은 마굿간에, 구유에 방치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대신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전심으로 영접하고 주님과 더불어 구유에도 십자가에도 가심으로 평화의 나라를 건설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erry Christ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