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멘토링 칼럼 30

30. 가난한 목수에게 임한 비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비전 멘토링 칼럼, 오늘은 성탄특집: 가난한 목수에게 임한 비전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필 그 목수의 이름은 요셉입니다. 그는 마리아는 그의 약혼자였습니다. 요셉은 사실 엄청난 가문의 후손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가장 위대한 가문인,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유다의 자랑 다윗과 솔로몬왕을 조상으로 가진 왕족의 직계손입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그의 너무나 자랑스러운 족보를 장황하게 전하여 줍니다. 그러나 여러 반전이 있습니다.

이미 살핀 데로 그는 인류역사상 가장 놀라운 가문의 장손이지만 그의 삶은 반전 그 자체입니다. 그는 정치적으로 권력이 있었거나, 종교적으로 주류속에서 영향력을 행하거나, 사회적으로 유명하거나, 경제적으로 부유하거나, 가정적으로 오래 행복하게 산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씩 그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다윗의 후손이면 당연히 정치적인 후광 속에서 어떤 정치적인 힘을 가질 수 있었을 터인데, 그는 그런 정치력에서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먼저 그는 정치가가 아니었고, 목수였습니다. 그는 다윗왕의 왕궁이 있던 예루살렘에서 살지도 못하였고, 더욱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에서 살지도 못하였습니다. 대신 나사렛에서 무슨 귀한 것이 날까하는 속담이 있을 정도의 비천한 마을에서 살았습니다.

종교적으로도 그는 당시 4개 종파인 바리새파, 사두개파, 엣세네파, 열심당원파에 속하여 열심있게 종교적 사상과 행동을 한 기록이 없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유명했던 것 같지 않고 경제적으로 부유하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이유는 만약 그가 유명했고, 부유했다면 마리아가 출산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방을 마련해 주었겠고, 아니면 돈을 더 주고라도 여관 방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럼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떠 한가요? 우선 이스라엘의 정치와 사회와 종교적인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국가적으로는 이미 우리가 잘 아는 데로 로마의 속국으로 살아가는 상황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전 국민이 아람어를 평상어로 사용했습니다. 이 말이 말해주는 것이 무엇인가요? 이스라엘이 바사, 바벨론의 지배를 오래 받으면서 일상 언어가 히브리어에서 아람어로 바뀐 상황입니다. 공부를 하거나 시장에 가서 장사를 하려면 그리스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관공서에 가면 로마어로 대화를 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어는 회당에서 두루마리를 읽을 때 사용하는 종교 언어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주변국과의 역사 속에서 만신창이가 된 이스라엘을 말해줍니다.

이미 이스라엘은 구원자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가문에서 날 것을 알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다윗의 후손 요셉과 마리아의 출산에 대단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만약 아브라함과 다윗과 그들에게 주신 주님의 비전의 언약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었다면 요셉이 출산을 앞둔 아내를 데리고 호적하러 왔을 때 그들을 정중하게 대접하고 방을 내어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치, 종교, 사회, 경제적인 힘과 유명세와 돈이 없었던 요셉 부부에 대하여 베들레헴 사람들은 세상의 잣대로만 판단하고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이스라엘은 바사, 바빌론, 그리스를 거처 로마의 식민지로 고통속에서 살았고, 또한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함으로 총체적인 어려움 속에 있었습니다.       

그런 혼돈된 이스라엘 상황에서 아무 능력도 없어 보이던 가난한 요셉에게 비전이 임한 것입니다. 그 비전이 구체적으로 임했는지 마태복음 118부터 23절까지를 살피면 다음과 같습니다.

1: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1: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1: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 것을 들은 요셉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혼돈도 있었겠지만, 우선 큰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우선 큰 혼돈 속에 있었던 자신의 고민을 알고 답을 주시는 하나님께 놀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놀란 것은 아브라함 이후 2000년간 내려오던 비전의 언약, 구세주의 탄생이 자신의 대에서 실현되는 것에 관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이 구절들을 통하여 알게 되는 요셉의 비전을 단기 비전과 장기 비전으로 구분하여 살피면 다음과 같습니다.

요셉의 비전

단기 비전아내 마리아를 통하여 안전하게 출생한 구원자 예수의 모습입니다.

장기 비전안전하게 태어나고, 하나님과 함께 장성하여,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비전은 요셉으로 하여금 가슴뛰는 감격을 주었겠고, 그 비전을 실현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그 사명을 목숨을 걸고 완성하려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요셉의 사명을 단기와 장기 사명으로 구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요셉의 사명

단기 사명나는 아내 마리아를 데려오고 안전하게 출산케 하기 위하여 존재한다.

장기 사명나는 예수께서 안전하고 권능있게 성장하여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케 하시기 위하여 존재한다.

 

요셉은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자신의 자존심과 사회 전통과 국경을 초월합니다. , 자신으로 말미암지 않은 아들의 안전한 출산을 위하여 마리아를 보호합니다. 그리고 훗날 또 헤롯왕이 왕으로 태어나신 예수님을 두려워하여 아기들을 죽이는 것에서 피하기 위하여 애굽으로 피신합니다. 그리고 안전해진 다음에서야 다시 갈릴리로 돌아 옮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은 전통속에서 두려워하던 요셉을 이렇게 담대한 사람으로 뒤바꾸어 놓았습니다.

우리의 비전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는 가난한 목수에게 임한 비전에 대하여 살폈습니다. 그는 몰락한 가문의 가난한 목수에 불과하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내가 출산할 때 아무도 특별 대접을 못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의 가문을 통하여 대대로 내려오던 구원자 탄생에 대한 비전을 소중히 간직했고, 마침내 그것이 자신에게 임하자 모든 정성과 성실로 그것을 소중하게 완성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도 주님의 다시 오심에 대한 놀라운 비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과연 몇 명의 사람들이 주님의 다시 오심에 대하여 두려움과 떨림으로, 모든 기쁨과 감격으로 준비하고 있을까요? 호적하러 온 많은 사람들 속에서 번잡하여 지고는 정작 그들이 그렇게 기다리던 예수님의 탄생을 간과한 베들레헴 사람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탄, 연말연시에 백화점의 번쩍이는 광고속에서 2000년전에 오신 예수님을 잊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을 잊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잊지는 않았는지요? 비전을 잃고 혼돈속에서 행한 베들레헴 사람이 될 것인지, 비전의 사람, 요셉이 될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비전은 우리에게 목숨을 걸고도 신이 나서 힘차게 일하는 감격을 줍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께 하나님께서 주신 이러한 가슴 뛰는 비전이 있으십니까? 주님은 여러분께서 출생하실 때 그 비전을 이미 주셨습니다. 모르신다면 멈추어 서고, 그것을 찾고 아셔야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셔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정과 직장, 교회적으로 비전을 찾기 원하시는 분들은 visionmentoring.org을 방문하시고 연락하십시오. 이제 다가오는 성탄절을 맞이하여 우리 모두가 비전의 사람, 요셉을 배우고, 비전의 언약을 굳게 잡으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