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비전 멘토링 칼럼 오늘은 성탄특집: 불가능한 소녀에게 임한 비전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비전 멘토링 칼럼에서는 성탄 전후의 이야기를 비전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비전이 어떻게 누구에게 임했고, 그 결과가 어떻고, 우리가 어떤 도전을 받을 것인지에 대하여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400년간 하나님의 음성이 끊겼던 것의 물고를 튼 의로운 제사장 사가랴에 대하여 살폈습니다. 참고로 모든 칼럼은 kgbc.com, visionmentoring.org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성탄 전후에 만나는 사람들에겐 놀라운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결같이 불가능한 상황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임한 놀라운 비전이었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늙어서 아기를 가질 수 없는 불가능한 사람들을 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아기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아기는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만날 사람은 사가랴와는 정 반대편에서 인간이 상상할 수 없었던 비전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녀의 이름은 마리아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했을 때는 12-13세쯤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아직 초경을 하기 전 순수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마리아에게는 다윗의 후손인 요셉이라는 약혼자가 있었고, 나사렛이라는 유대인들이 하찮게 생각하는 마을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녀에게 하나님의 천사 가브리엘을 통하여 비전이 임합니다. 하나님의 비전이 임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만 알고 계시던 미래를 드러내어 알게 하신 것이 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마리아를 통하여 태어날 인류의 구원자 예수님에 관계된 것이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전한 이런 비전에 대하여 마리아는 누가복음 1:34에서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라고 반문하지만 그의 설명을 듣고 곧 다음과 같이 화답합니다.
38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누가복음 1
이런 다음에 마리아는 친족 엘리사벳이 늙은 나이에 이미 임신 6개월인 것을 가서 확인하고는 찬양합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찬양은 혼자만의 기쁨을 말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장에 있는 마리아의 찬양중 주요내을을 살피면 다음과 같습니다.
48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54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55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누가복음 1
즉, 마리아는 비천한 자신과 언약 속의 이스라엘에 위대한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것이 말해주는 것은 마리아로 시작되는 이스라엘의 새로운 운명입니다. 마리아를 통하여 창세기 3장 15절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일이 드디어 시작되고, 계시록 12장 17절에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우는 일에 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마리아와 사가랴의 대조
이런 마리아가 가지고 있는 특수성을 알기 위하여는 사가랴와 대조점을 비교해 보면 흥미로운 것들을 더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사가랴가 남자였고 늙었고 제사장이었다면 마리아는 여자고, 소녀 처녀이고, 제도권 권력과는 먼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사가랴가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 성전의 그것도 성소에서 천사 가브리엘을 만났다면, 마리아는 그를 유대에서 성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시골, 갈릴리의 나사렛에서 만났습니다. 사가랴에게 오래 함께 산 아내 엘리사벳이 있었다면 마리아에게는 한번도 같이 살아보지 않은 약혼자 요셉이 있었을 뿐입니다. 사가랴가 명예로운 제사장 직분을 위하여 예루살렘에 살면서 성전일을 하다가 그 일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갔다면, 마리아는 평생 한번도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육체적인 관계를 통하여 아들 요한을 잉태했다면 마리아는 남자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아들 예수님을 잉태하였습니다. 사가랴는 아비야 반열이고, 그의 아내 엘리사벳은 아론의 반열로 뼈대 있는 가문이지만 마리아의 부모의 이름은 언급이 없습니다. 사가랴는 늙을 때까지 그일을 위하여 기도했지만, 마리아는 한번도 아기 임신을 위하여 기도해 본적이 없습니다. 사가랴는 늙은 나이에 임신하는 것에 대하여 과연 그럴수 있을까 의심하고, 또 창피하게 생각하여 아내를 숨기지만, 마리아는 사회적으로 돌을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천사의 말에 대하여 담대하게 받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걱정도 담대하게 주님께 맡김니다.
사가랴와 마리아는 사실 두 시대를 상징합니다. 늙기까지 평생 아들에 대한 기도를 했지만 응답을 못받았던 사가랴는 지난 400년간의 메시아에 대한 기도를 했지만 응답없었던 과거의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제 자신이 상상치 않았던 것을 은혜로, 성령으로 받았기에, 그녀는 이제 미래에 구원을 은혜로, 성령으로 받을 모든 미래의 영적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결론적으로 불가능한 비전을 받은 마리아를 통하여 배우는 하나님 비전의 비밀은 이러합니다. 하나님의 비전은 가문적, 직책적, 사회적 어떤 내놓으라 할 것이 없는 사람에게도, 심지어 그것을 위하여 기도를 하지도 않은 사람에게도 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의 세 친구가 주장한 믿음의 상식, 그들이 정한, 우리가 정한 합리적인 박스 밖에 계십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사무엘상 16:7절의 말씀과도 같습니다. 여기서 외모는 사람들의 상식적 규범 모든 것입니다. 마가복음 6:3절에서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더냐”라는 식의, 과거에 어떤 것에 사로잡혀 평가하는 모든 것을 뜻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오늘 하나님 보기시에 합당한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내가 어려서, 영어를 못하여서, 신분이 안되어서, 재정이 없어서, 건강이 없어서, 가정적으로 아픔이 있어서, 학벌이 없어서, 어린 시절 상처가 많아서, 성경을 몰라서 등등의 수많은 핑계거리를 말하며 주님의 일을 멀리 합니다. 그런 핑계는 오직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비전에서 멀어지게 할 뿐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비전을 받기 위하여 어찌해야 할까요? 마리아를 통하여 배우는 것은 순수와 순전함입니다. 사가랴 제사장께서 산전 수전을 다 겪은 후 온전한 사람이 되었지만, 그는 유대인의 합리성을 가지고 증표를 요구합니다. 그것의 무게 중심은 의심 쪽이 아니라 확증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마치 기드온이 양털에 증표를 구했던 것 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런 유대인의 약삭빠르고 합리적인 증표를 요청할 세상적 지혜도 없었습니다. 대신 그녀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담대하고 순수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런 순수는 우리가 주님께 순수로 나오는 순간, 순간적으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비밀입니다. 그간 내 삶이 직업의 현장에서, 가정에서 혼돈스러운 것들로 답답하여 강팍해졌을 지라도 지금 이 순간 천사 앞에 선 마리아의 심정으로 주님 앞에 서십시오. 그리고 그 품에 아무 거리낌 없이 안기십시오. 그리고 마리아가 천사에게 고백했던 것처럼 주님께 고백하십시오.
“오직 주의 종이오니 주의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 지리이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주님께서 천사를 보내주실 때 까지 기다려야 할까요? 아닙니다. 전도를 위하여 오래 기도하신 분, 한 명을 품으시고 잉태하십시오.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찾아가 만나주고, 그가 예수님을 만나므로 진정한 성탄절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렇게 영적 마리아가 되십시오. 그러나 그렇게 한 명을 전도한 것이 다가 아닙니다. 여전히 여러분의 궁극적이 비전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위하여 기도하시고, 비전 멘토링 인터내셔널을 통하여 비전을 알 수 있도록 연말 연시에 계획도 잡아 보십시오.
여러분 오늘은 성탄특집: 불가능한 소녀에게 임한 비전이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이스라엘의 비전을 보여주는 마리아 에 대하여 살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