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비전 멘토링 칼럼, 오늘은 [이정재, 모세, 프랭클, 이기는 자의 비전]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우리는 지난 5주간 빅터 프랭클 박사에 대하여 살폈습니다. 그래서 모세도 잘 아시고 프랭클도 잘 아시지만 이정재는 누구인지 궁금하시지요?
제가 오늘 소개할 이정재는 2021년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으로 에미상에서 한국인 최초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그 배우입니다. 민족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그의 그러한 성취는 축하할 일입니다. 그런데 그가 왜 오늘 이야기에 등장할까요?
그가 주연한 영화 중에 한국의 최고 배우들인 하정우와 전지현 등이 출연하여 한국에서 천만관객을 동원한 암살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그는 독립운동가인데 일본군에 잡혀 투옥됩니다. 일본의 협박에 넘어가 그는 이중 스파이가 되어 독립군을 일본에 밀고합니다. 당시 상해임시정부 김구선생께서 그가 일본의 돈을 받고 정보를 파는 것을 알고 그를 암살하라고 하지만 그를 죽이려는 두명에게 오히려 누명을 쒸워 그들을 죽게 만들고 살아납니다. 해방 후 그는 그런 간악함을 활용 경찰 간부가 되기도 합니다.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를 받고 독립군 시해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지만 그의 매국행위를 증언할 증인이 증언 직전에 암살되면서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납니다.
그렇게 영화가 끝나는가 했는데 그에 의하여 죽임당했던 독립운동가들이 살아 나와 그에게 묻습니다. 다음은 여자 암살자 안옥균과 이중스파이 염석진의 대화입니다.
안옥윤: 왜 동지를 팔았나?
염석진: 몰랐으니까. 해방될 줄 몰랐으니까. 알면 그랬겠나?
안옥윤: 16년 전 임무, 염석진이 밀정이면 죽여라, 지금 수행합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안옥윤 역할의 전지현이 추하게 늙은 이정재에게 통쾌한 복수를 합니다. 영화는 이렇게 현실세계에서 심판이 되지 않을지라도 역사는 진실을 기억하며 정의가 불의를 심판한다는 것을 암시하며 끝납니다.
이 영화의 이런 장면과 모세와 프랭클과는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요?
배우 이정재가 역할을 한 염석진은 일제 식민통치의 암울한 시대에 해방이라는 비전없이 악하게 산 사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의 그런 모습은 출애굽 해방 전과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비전이 없기에 악하게 한 사람들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모세를 통해 출애굽을 할 때에도 마실 물을 구하지 못하자 차라리 애굽에 있었을 때가 좋았다고 지금이라도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말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필시 애굽의 앞잡이를 하면서 애굽의 축복을 받은 이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5주간 로고테라피의 창시자 빅터 프랭클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독일군 앞잡이를 하면서 나치보다 더 간악하게 유대인을 대했던 사람들이 있었음을 살폈습니다. 일제시대 때 일본군 앞잡이들, 모세의 출애굽때 애굽의 앞잡이들, 이차세계대전 때 아우슈비츠에서 간악하게 행동했던 나치 앞잡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이었을까요?
여러 이유를 말할 수 있을 것이지만 저는 비전의 부재를 먼저 꼽고 싶습니다. 이중스파이 염석진은 말합니다. “몰랐으니까. 해방될 줄 몰랐으니까. 알면 그랬겠나?” 해방이 될 미래 비전이 있었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생각하는 것은 미래 비전의 힘에 관한 것이고 그 비전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것입니다.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을 믿는 크나큰 축복 중에 하나는 하나님께서 미리 알려주시는 미래 비전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400년간 종살이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미리 알게 하셨습니다. 창세기 15장 13-14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창세기15:13-14)
하나님께서는 이 언약 뿐 아니라 성경을 통하여 인류의 미래에 대하여 비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관건은 이런 언약을 아느냐 모르느냐, 알았다면 믿느냐 안 믿느냐, 믿는다면 믿은 대로 행하여 열매를 맺느냐 안 맺느냐일 것입니다.
요셉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의 애굽 시대가 시작됩니다. 요셉 이후에 요셉을 모르는 바로가 나타나 이스라엘을 노예화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요셉이 죽은 후 요셉을 모르는 바로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아마 이스라엘이 최소 300년간 종살이를 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300년간을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어제도 오늘도 종살이를 했을 텐데 그런 삶을 산 사람들의 생각은 어떠했을까요? 우리는 팔자가 이렇고 강력한 애굽군사들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체념하지 않았을까요? 그들이 출애굽 탈출, 해방 이런 것을 생각할 수 있었을까요?
빅터 프랭클의 아우슈비츠 죽음의 수용소이야기는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행했을 것을 쉽게 알게합 니다. 1940년부터 1944년까지 불과 4년간 운영된 아우슈비츠에서도 같은 동족, 같은 억울함을 가지 죄수임에도 나치편에서도 유대인을 더 간악하게 다루던 유대인 나치 앞잡이들이 이야기는 미래 비전 없이 사는 인간의 나약함을 보여줍니다. 불과 4년의 고난에서도 악하게 행한 사람들이 400년 암울한 시대에는 어찌 행동했을까요?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암울한 현실 앞에 무릎을 꿇을 때에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그 언약 실현을 비전으로 품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경건한 비저너리 요셉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400년 종살이 비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또 400년 후 출애굽의 비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출애굽의 비전 언약의 증거로 삼기 위하여 자신이 권세가 있을 때 그의 후손들이 거부하지 못할 유언을 남깁니다. 즉, 자신의 유골을 가나안에 묻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요셉의 사후 요셉을 알지 못하는 바로가 나타나 이스라엘을 노예화 했을 때에도 요셉의 관은 출애굽 비전 언약의 증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출애굽을 할 때에 이스라엘은 요셉의 유골을 가지고 애굽을 탈출합니다.
또한 프랭클 박사는 아우슈비츠 죽음의 수용소에서 삶의 의미를 파악하고 미래 비전을 가졌기에 암울한 현실을 이기고 살아 남고 그 증거자로 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암살이라는 영화 속에 자신의 목숨을 위하여 동료 독립군을 죽인 사람은 36년 식민 통치후 올 민족의 해방이라는 미래 비전을 알지 못했습니다. 불과 4후 전쟁이 끝나고 아우슈비츠가 문을 닫고 독일군에 부역한 자들을 처단하는 때가 올 것을 몰랐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아니 당장 내일 일, 아니 잠시 후의 일을 모르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그러나 그런 인간이 알고 확신할 수 있는 미래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묵시로, 계시로, 비전으로 알려 주신 미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확실한 미래를 알려 주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죽는 다는 것과 죽은 후 심판이 있다는 것과 그 심판은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청지기로 주신 비전, 사명, 자원에 근거하여 하신 다는 것과 이긴 자에게는 천국의 상급으로 진 자들에게는 지옥의 상급으로 영원을 살게 하신 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을 통하여 알려 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개인이 어떤 분야에서 청지기로 살면서 미래를 완성할 것인지도 성령을 통하여 알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성도들이 믿음은 있으되 비전을 알지 못함으로 혼돈 속에서 달아 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에 더하여 비전을 알기 원하십니다. 이유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할 때 비전은 내가 단순히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미래의 실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비전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미래를 확신하며 이기고 또 이기게 하는 가슴 뜨거운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믿음위에 선 하나님의 온전한 비전을 가진 이들은 이기고 또 이길 것입니다.
비전 멘토링 칼럼, 지금까지 이정재, 모세, 프랭클과 이기는 자의 비전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잠언 29장 18절은 “묵시 즉 비전이 없으면 망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암담해 보이는 시절에 빛을 주는 것은 비전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입니다. 오늘도 암울 할 수 있는 현실 세계에서도 모두가 진리, 자유, 행복할 비전을 품고 1주일을 준비하며 인생과 시대를 완성할 여러분을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