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멘토링 칼럼 173

173. 빅토 프랭클의 무의미와 비전

샬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비전 멘토링 칼럼, 오늘은 [빅토 프랭클의 무의미와 비전]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빅토 프랭클박사는 오스트리아 정신과 의사로 2차세계대전 때 참혹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 남았을 뿐 아니라 경험을 그 경험을 통해 얻은 의미의 중요성을 중심으로 로고테라피를 창안하고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1946년에 독일어 판으로 수용소에서 심리학자의 경험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판하였고 1959년에 영어판 Men’s Search for Meaning이라는 제목으로 개정판이 출판되었습니다. 우리가 살필 그의 경험과 이론은 이 영어판을 근거합니다. 오늘은 의미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개념 중에 하나인 무의미에 대하여 살펴 보겠습니다. 그의 책에는 무의미하게 살아 가는 사람들에 대한 각종 설문 내용이 이곳 저곳에 언급되어 있는데 10분안에 모두 훑어보고 무의미의 의미와 비전에 대하여 살펴 보겠습니다. 다음은 그의 책의 인용입니다.

몇 년 전 프랑스에서 설문 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그 결과 89퍼센트의 사람들이 인간에게는 살아야 할 의미를 주는 ‘그 무엇’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그중 61퍼센트는 자기 삶에 기꺼이 그것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어떤 것’과 ‘어떤 사람’이 있다고 대답했다.

그 후 나는 빈에 있는 내 진료소에서 환자들과 병원 직원들을 대상으로 같은 종류의 설문을 실시했다. 그 결과 프랑스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던 것과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불과 2퍼센트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이상 프랭클 박사의 책 인용이었습니다. 프랭클 박사는 89%의 사람들이 살아야할 의미를 주는 그 무엇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고 그중 61%만이 그것이 있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높은 수치일까요?

사실 100%의 인간이 인생의 의미를 알고 목숨을 걸만한 의미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61%만이 목숨을 걸 어떤 것과 어떤 사람이 있다고 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수치입니다. 그런데 그 61%도 과연 진정으로 의미 있는 것에 목숨을 걸고 있을까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어지는 프랭클 박사의 글입니다.

존스홉킨스 대학교에서는 사회 과학자들이 48개 대학 7,948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통계 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이 예비 보고서는 국립정신건강연구소의 지원을 받아 2년 동안 진행된 연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작성된 것이다. 설문에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학생 16퍼센트가 ‘돈을 많이 버는 것’이라고 대답한 반면, 78퍼센트는 첫 번째 목표가 ‘자기 삶의 목표와 의미를 찾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240/340

이상 프랭클 박사의 책 인용이었습니다. 48개 대학 7,948명의 대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물었을 때 16%가가 돈을 많이 버는 것으로, 78%가 자기 삶의 목표와 의미를 찾는 것이라고 답을 했답니다. 문제는 그들이 그것을 찾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끝내 찾지 못하고 한때 질문하다 포기한 채 살아갑니다. 혹시 우리가 그렇지는 않습니까? 못찾았지만 크게 상처받지는 않고 살아갑니다. 이유는 자명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 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잡은 직장에 다니면서 과연 내가 이것을 하는 것이 맞나 하지만 그런 질문은 사치라고 생각하면서 하루 하루 열심히 일하며 월급을 받아 가족 부양을 하며 교회에 헌금하는 것을 의미있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어지는 프랭클 박사의 글입니다.

최근 내가 가르치고 있는 유럽 학생을 조사했더니 전체의 25퍼센트가 크든 작든 실존적 공허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학생들은 25퍼센트가 아니라 무려 60퍼센트가 이런 공허감을 느끼고 있었다. 254

이상 프랭클 박사의 책 인용이었습니다. 프랭클 박사는 자신이 조사한 유럽학생의 25%가 실존적 공허감을 느끼고, 미국 학생들의 경우에는 무려 60%가 실존적 공허감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전쟁을 심각하게 겪은 후 살아 남고 살아 있는 것의 의미를 새롭게 느꼈을 유럽 학생에 비하여 비교적 평화와 안정속에서 생활하는 미국 학생들의 경우에는 유럽학생들에 비하여 두배 반이나 많은 학생들이 실존적 공허를 느꼈다합니다. 아마 그들이 소위 마리화나를 하면서 히피 족속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프랭클 박사는 이어서 스탠퍼드 대학의 연구를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스탠퍼드 대학의 어빈 D. 얄롬은 《실존주의 심리 치료Existential Psychotherapy》에서 정신과 외래 병동에서 연속적으로 치료를 받았던 40명의 환자 중 12명(30퍼센트)이 바로 이 삶의 의미와 관련된 문제로 병을 얻었다고 보고한다. 그곳에서 수천 마일 떨어진 팔로알토의 동부 지방에서 조사한 결과도 단지 1퍼센트밖에는 차이가 나지 않았다. 가장 최근 빈에서 실시한 통계 조사를 보면 전체 인구의 29퍼센트가 자신의 삶에서 의미가 실종됐다고 호소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14

이상 프랭클 박사의 책 인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정신과 외래 병동의 경우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계속되는 프랭클 박사의 이야기 입니다.

세 번째 문제인 중독에 관해서는 안네마리 폰 포르스트마이어가 발표한 연구 결과가 생각난다. 시험과 통계 자료가 증명하는 바와 같이 그녀는 자신이 조사한 알코올 중독자의 90퍼센트가 스스로 아무 의미가 없다는 극단적인 생각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스탠리 크리프너가 연구했던 약물 중독의 경우에는 환자의 100퍼센트가 만사 무의미해 보인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상 프랭클 박사의 책 인용이었습니다. 즉, 알코올 중독자 90% 마약 중독자 100%가 만사 무의미 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해 주는 것은 중독자들이 술과 마약에 중독되기 전에 진정으로 중독된 것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무의미”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알코올과 마약 중독자들의 치료의 핵심은 의미를 찾아 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그런데 의미를 찾는 것이 쉬우면 왜 안 찿겠습니까? 오늘 의미를 찾는 것이 어려웠던 이유와 쉽게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의미라는 말을 중앙에 놓으면 아래편에 위치하는 부정적인 반대말은 무의미이고, 무의미는 진리와 진실에 대한 무지와 혼돈에서 오고, 그 아래에 혼돈의 영인 사탄이 존재합니다. 사탄은 처음부터 거짓말하는 자요 살인자로 우리로 하여금 진리가 주는 진실을 모르게 함으로 혼돈에 빠지고 의미를 모르게 조장합니다. 진실은 우리가 육체의 눈으로 보는 세계와 영의 눈으로 보이는 세계의 종합에서 근거합니다. 그러나 타락으로 인해 영의 능력을 상실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혼만을 담고 있는 육체의 눈만 의지함으로 인생의 참된 의미를 알 수 있지가 않습니다.

인간이 영적 진리와 진실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영적 선물로 허락하신 영적 믿음을 통해 보는 것입니다. 이 영적 믿음과 영적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통합적으로 보지 못하니 사람들이 혼돈에 빠지고 의미를 찾지 못합니다.

이제 의미의 위편에 있는 것을 알아보겠습니다. 의미의 위편에 위치한 개념은 비전이고 그 비전 위에 하나님이 존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각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영성과 기질과 체질과 삶의 배경을 다르게 주심으로 각 자의 영역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도록 비전과 자원을 주십니다. 그래서 그래서 삶의 의미는 영적 진리와 진실에 근거한 믿음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삶의 존재 이유인 비전을 알 때 온전하게 알 수 있습니다. 비전 멘토링은 온전한 믿음 위에 온전한 하나님의 비전을 실현시켜 드리려합니다.

비전 멘토링 칼럼, 지금까지 빅토 프랭클 박사의 책 Men’s Search for Meaning이라는 책에서 프랭클 박사가 언급한 의미와 무의미에 관한 다양한 조사 수치를 살펴보았습니다. 결론적으로 2차대전의 참혹한 죽음을 딛고 선 당시 유럽 대학생들에 비해 미국 대학생들이 무의미 비율이 높고, 일반인 보다 정신과 외래 환자에게 높고, 또한 알콜과 마약 중독자의 경우 절대 다수 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참된 의미가 온전한 믿음위에 온전한 비전을 알 때 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모쪼록 우리 모두가 이제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존재 목적의 관점에서 비전을 알고 의미와 보람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