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멘토링 칼럼 141

140. 실제상황 죽음과 비전, 준비 되셨습니까?

샬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비전 멘토링 칼럼 오늘은 [노년의 죽음과 비전, 준비 되셨습니까?]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2022년 새해에 들어서 우리는 여전히 코로나 감염과 이따금씩 접하는 지인들의 갑작스러운 소천 소식에 당황하게 됩니다. 죽음, 당연히 우리에게 뗄 수 없는 것이지만 이것 만큼 어색하고 친하고 싶지 않은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언젠가 우리가 대면하여 모든 면에서 친숙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명적인 것이기에, 그렇지 않으면 심각한 부작용으로 너무나 크나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기에 몇 주간 시리즈의 칼럼을 통하여 죽음과 비전에 대하여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죽음에 관한 신학적 내용

죽음에 대하여 친하게, 혹은 친숙하게 잘 알지 못하면 심각한 부작용의 대가를 치른다는 말이 무엇일까요? 사실 기독교는 죽음에 관한한 최고 전문입니다. 어느 종교도 말해 주지 못하는 죽음의 근본적인 이유와 결과를 말해 줍니다.

죽음의 이유가 죄에 있기에 죄인인 우리가 죽는 다는 것, 이 땅에서 육체로 죽는 것이 다가 아니기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어 주셔서 두 번 죽지 아니하고 영원히 살게 하신다는 놀라운 비밀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죽음에 관한 신학적, 영적 이슈입니다. 그런데 죽음에 관한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죽음에 관한 실제적 이슈들

다른 부분은 우리가 죽음을 직면하는 의료적이고 임종 상황의 현실에 관한 것입니다. 신학적이고 영적 죽음에 대하여는 잘 알고 있지만 육체적이고 의료적인 현실적 죽음에 관한 것은 또 다른 것입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육체적 죽음 과정에 친숙하지 않고 친하게 지내려 하지 않기에 말기 불치병 상황, 그리고 임종 즈음의 상황이 막상 자신과 가족에게 닥칠 때 무척 당황합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을 사탄이 너무나 잘 알고 있고, 성도들을 영적, 심리적, 육체적, 재정적, 관계적으로 농락하는 것입니다. 영적 탈진, 심리적 절망감, 육체적 무기력감은 물론 간병할 가족과 관계적  파괴와 그나마 모아 놓은 재정의 파산 상태까지 경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참으로 심각한 지경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쯤에서 케이스 하나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한국에서 사역하시는 한 목사님의 고모님 케이스입니다.

그 고모님은 평생을 독신으로 교회를 중심으로 사시면서 주일이면 멘 앞자리에 앉아서 목사님의 설교를 받아 적으면서 신실하신 분이셨답니다. 그렇게 활발하시던 고모님께서도 세월을 피할 수 없어서 노령이 되셨고, 암판정을 받으셨습니다. 평생을 독신으로 사신 고모님이셨기에 목사님께서 옆에서 섬겨드리면서 고모님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고모님은 역시 믿음의 용사셨습니다. 의사들께서 병세를 말씀해 주셨지만 고모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고쳐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고모님의 병세는 호전의 기미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고모님께서 당황하셨습니다. 의심없이 믿은 하나님께서 어찌 치유해주지 않는지?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것 같은 상황에 심각한 도전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육체의 병 보다도 이제 믿음에 더 큰 도전을 받겠되셨답니다. 결국 고모님은 암투병을 하시다가 고통속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주님께 치유를 간구하며, 죽는 것은 믿음의 실패, 기도의 실패로 생각하였기에 마지막 순간까지 치유를 간구하면서 고모님은 삶을 정돈할 시간을 갖지 못하고 소천하셨습니다. 혹시 오늘날 다른 성도들은 영적 죽음에 대하여 놀라운 비밀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육체적 죽음 부분에 대하여 전혀 준비가 없음으로 영적 권세도 온전하게 사용하지 못하고 치유라는 신념에 올인하여 기도하다가, 죽을 준비를 하지 않으시다가 삶을 정돈할 기회를 놓이고 황당한 소천을 하시지는 않는지요?

         실제상황 죽음

생각해 보십시오. 죽으면 천국에 간다는 말은 따뜻하고 감격스럽습니다. 내가 지금 가는 상황이 아니면 말입니다. 그래서 천국에 대하여 큰 목소리로 설교하시는 목사님께 그렇게 좋은 곳인데 목사님은 왜 그곳에 빨리 안가시려고 버팅기시나요?라고 우스게소리를 했다 하죠.

막상 건강에 무슨 일이 생겨서 앰뷸런스에 내가 누워있는 상황을 상상해 보십시오. 영적 평화는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와 숨가쁜 병원 입원, 그리고 찌르며 들어오는 주사 바늘과 더불어 빠져나가는 피와 더불어 사라져갑니다. 또한 머리맡에는 심전도, 폐기능 확인 기기들이 붉고 푸른 불빛들과 간헐적으로 삐삐 거리는 소음들로 존재감을 위협스럽게 드러내며 우리의 믿음을 위축시킬지도 모릅니다. 나직히 찬송을 듣거나 부르며 차 한잔을 하면서 절대 안정을 취하며 조용히 깊은 생각을 해야할 것 같은 상황인데  복도에서 들리는 다급한 발 소리들, 고문하듯 24시간 켜 있는 병실의 형광 조명과 얇은 커튼을 찢듯이 들리는 옆 침대 중환자들의 고통스러운 신음소리, 그리고 급하게 빼져 나가는 환자들을 침대는 말기 불치병을 앓는  성도로 하여금 죽음을 교회에서 편하게 앉아서 배웠던 상태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합니다.

한때 맑고 밝은 어린이였고 질풍노도와 같던 청소년 시절을 지난 청년이었고 직장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장로님으로, 권사님으로, 또 집사님과 기타 지도자로 행하셨던 분들이 그러한 상황 속에서 힘을 잃고 누워서 죽음을 기다리시는 그 심정은 어떠 실까요?  한때 기도만 하면 모든 일이 그대로 일어날 것이라고 믿었던 그 믿음이 흔들리고, 자신의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는 것이 어려워졌을 때 심정은 어떠할까요? 죽음이 임박하여지면서 영의 눈이 열리고 죽음의 영들이 보이기 시작할 때 심정이 어떨까요? 그렇지 않아도 죽음을 생각하면 답답하고 두려운데 죽음의 영들이 병실에서 보일 때 참람할 것입니다.

머리속에는 여러가지 생각이 오갑니다. 유언을 해야하나, 유언장을 미리 써 놓을 걸, 지금이라도 유언을 한다고 하면 마치 내가 죽으러 들어온 것 같아 좀 재수없는 생각 같기도 하고, 또 기도해서 당연히 이기고 나가서 다시 힘있게 살아야지 무슨 믿음 없는 소리를… 이런 생각들이 오갈 것입니다. 그러면서 죽음이 코 앞에 다가온 듯한 느낌도 들 때 두려움이 몰려 올 것입니다. 막상 주님께 가면 어떻게 되는 거지라는 질문에 답답해질 것입니다. 남아 있을 배우자와 자녀들의 생각을 하면서 죽음에 대하여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왜, 이러한 내용을 비전 멘토링 칼럼에서 살핀 것일까요?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인생의 비전을 완성케 하시려는 빅 픽쳐에서 매우 잘 못된 그림이 그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은퇴 그리고 노화는 하나님께서 주신 고귀한 선물입니다. 은퇴를 통하여 이제 직장의 일이 아니라 개인과 가정, 교회의 삶을 완성하도록, 노화를 통하여 육체의 힘이 아니라 지혜를 통합하며 삶을 완성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나아 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은퇴 후의 삶을 허비하며 살다가 어느 날 병원에 입원하시고 치매와 노환의 고통 속에서 인간의 존엄을 상실한 채 안타까운 삶을 살다가 소천 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 나아가 심판을 받으실 텐데 전혀 준비 없는 삶을 살다가 주님 앞에 서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여러분들께서는 그 상황에 준비되셨습니까? 비전 멘토링 인터내셔널에서는 청소년의 비전, 청장년의 비전 실현, 노년기의 비전적 삶의 완성을 돕습니다. 물론 청장년, 노년들도 비전을 찾지 못했다면 그것부터 출발해야 하겠죠.

비전 멘토링 칼럼 오늘은 [실제상황 죽음과 비전, 준비되셨습니까?]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교회에서 영적 죽음에 관하여만 들으시다가 막상 죽음이 실제 상황으로 내게 다가 올 때 우리와 가족들은 심각하게 당황하여 영적 능력도 상실한 채 혼돈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몇 주간 이 주제를 깊이있게 살필 것입니다. 이제 영, 혼, 육, 제정 모든 면에서 죽음을 준비하며 삶을 온전히 완성하고 주님께 감격으로 가는 것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