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비전 멘토링 칼럼 오늘은 [예수님의 비유 2_믿음은 사람, 비전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에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세 비유 중에 하나인 달란트의 비유가 어떻게 비전 경영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믿음은 사람의 것, 비전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제목으로 왜 우리가 주님을 믿는 믿음 위에 이제 비전 경영의 삶을 더하여 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믿음이 왜 사람의 것?
그렇다면 왜 믿음은 사람의 것, 비전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궁금하시죠? 그런데 사실 글자 그대로 입니다. 믿음은 사람의 일입니다. 왜 그럴까요? 먼저 믿음의 정의를 성경에서 찾아보겠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 | 히브리서 11:1
맞습니다. 무엇을 믿는 다는 것은 시간적으로 현재적이지 않은 것, 공간적으로 이곳에 있지 않은 어떤 것에 대한 기대와 신뢰, 확신에 관한 것입니다. 즉, 없는 것이기 때문에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창조에 대한 믿음, 그것을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들의 동의는 믿음에 근거합니다. 반대로 이미 현실에 현재에 있는 것이라면 이 공간과 현재에 있는지를 확인하고 인식하고 인정하면 됩니다. 그러나 없는 것에 관한 것이면 믿음이 필요하게 됩니다.
비전이 왜 하나님의 것?
그렇다면 왜 비전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비전은 정의상 하나님께서 드러내어 주신 하나님만 알고 계시던 비밀을 알게 된 것입니다. 잠언 29장 18절의 말씀은 비전이 무엇인지 잘 설명해 줍니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 잠언 29:18
묵시라고 언급된 이 단어의 뜻은 감추어진 것이 드러나서 알게 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만 알고 계시던 비밀스러운 일을 드러내어 우리에게 알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묵시, 계시는 그래서 모두 비전적입니다. 그래서 온전한 비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것입니다.
왜 믿음이 하나님 것이 아닌가?
이유는 간단합니다. 믿음은 현재 여기 없는 과거에 있었던, 혹은 미래에 있을 것에 관한 것을 믿는 것인데 하나님께는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 같기에 없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없기에 그것을 믿음으로 믿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왜 비전이 인간의 것이 아닌가?
이 이유도 간단합니다. 비전은 미래에 관한 것이고, 인간은 인간이라는 특성상 미래에 관하여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잠언 8장 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장래 일을 가르칠 자가 누구이랴 | 잠언 8:7
반전
그런데 여기에서 반전이 생깁니다. 그것은 미래는 하나님의 것이고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그 미래를 인간에게 보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만 아시는 미래의 일을 인간에게 알게 하십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공통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께서 가지신 미래의 계획을 비전으로 부여 받고 그것의 실현을 사명으로 삼고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경우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형통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다윗, 다니엘, 베드로, 바울등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물론 잘못된 비전을 주는 존재도 있어서 주의해야 합니다. 무당과 점쟁이들은 악령에 속하여 귀신의 힘으로 약간의 미래에 대하여 알려 줄 수 있으나 귀신장난으로 더 큰 해를 끼치게 됩니다.
하나님의 비전, 인간의 믿음 그리고 인간의 비전
그럼 지금까지 살핀 것들을 마태복음 25장의 비유들을 적용해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5장의 세 비유는 천국은 마치 이러하다는 말로 시작됩니다. 즉, 주님께서 가지고 계신 천국 비전에 관한 것인데, 주님께서는 우리가 천국에 들어 가는 모습을 비전으로 가지고 계신 것을 알려주십니다. 천국에 가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하는지 하나님은 어떤 경영 원리로 사람들을 성장시키고 판단하시며 천국에 들이고 안들이실 것을 정하는지에 대하여 다각도로 설명해 주십니다.
인간의 지혜는 주님께서 설명해 주신 이 비유를 믿고, 주님의 비전을 자신의 비전으로 삼고, 그 비전 실현에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 하는 것에 있습니다. 여기에서 핵심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 위에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믿음만 가지고 안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경주에서 필요한 경영의 지혜를 얻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필 마태복음 25장의 세 비유는 이것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성경 속으로 들어가 그 이유를 살펴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적용
마태복음 25장에서 주님은 세 비유를 말씀해 주시면 주님의 세 비전을 선포하십니다. 첫째, 열 처녀의 비유는 천국에서 있을 혼인잔치의 비전에 대하여; 둘째, 달란트의 비유는 천국에서 주님의 즐거움에 참여하며 고을들을 다스리게 될 비전에 대하여; 셋째, 양과 염소의 비유는 창세전에 예비된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천국의 비전에 대하여 알려줍니다.
관건은 이 비전을 받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 비유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의 모두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믿음 위에 택함까지 받은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특별하게 택함을 받은 믿음의 사람들이 어떻게 두 부류로 나뉘게 될까요? 왜 믿음이 있고, 믿음으로 실행까지 했던 5명의 신부는 미련하다고 여김을 받으며 혼인잔치에 못 들어가고, 왜 한 종은 달란트를 땅에 묻고, 왜 한 부류의 사람들은 염소로 판정을 받았을까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다 하나님을 아는 믿음의 사람들인데 말입니다.
믿음 위에 비전
비유들의 핵심은 주님께서 모든 믿음의 사람들에게 비전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비전을 소중하게 여기고 철저한 경영 전략으로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고, 5배와 2배로 남는 장사를 하고, 여분의 사랑으로 어려운 이웃을 섬기는 소중한 삶을 살아냅니다. 이것이 믿음 위에 비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의 삶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믿음은 있지만 미련하고 게으르고 염소같이 살 수 있습니다. 이유는 비전의 목적지를 정확히 모르기에 대충 착하게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비전 경영원리
이 칼럼에서 다 설명하지 못하지만 마태복음 25장의 비유들 뿐 아니라, 주님께서 주도적으로 행하신 일들은 V.M.O.S.T. A.R.T. © 경영원리의 내용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행하신 일들은 비전과 가치를 가지고 행하시고, 비전을 실현하기 위하여 사명화하시며, 사명을 목표치로 세분화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전략을 가지고 시간 계획속에서 실행하시고, 그리고 평가하고 상급을 주며 휴식하고 감사하기 등의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들을 비전과 비전 경영 차원에서 보면 주님의 말씀을 더 깊은 지혜로 보면서 수행을 위한 더 강렬할 능력을 입게 됩니다.
오해하지 말 것
비전과 비전 경영이라 할 때 오해하지 말 것이 있습니다. 비전 멘토링에서 말하는 비전은 인간의 욕망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온전한 비전을 오식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미래의 일을 우리에게 알게 하셔서 알게 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비전을 나의 비전으로 삼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비전 경영이라 할 때도 인간적으로 머리를 쓰는 것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대신 하나님께서도 종들에게 장사를 하라고 하시고 충분한 자원과 시간을 주시고, 후에 평가하시고, 상급을 주시는 것 처럼 주님은 경영 계획의 패턴을 가지고 행하십니다. 이 패턴은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모든 비유에 적용되는 경영원리입니다. 이것이 V.M.O.S.T. A.R.T. ©의 근거이기도 합니다.
비전 멘토링 칼럼, 지금까지 예수님의 비유_믿음은 사람, 비전은 하나님 것이라는 제목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고, 비전은 오직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나 반전은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에게 비전을 주셔서 미래를 알고 그 실현을 위하여 살게 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믿는 믿음 위에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온전히 알고 그 실현을 위한 치밀한 경영 전략을 세우고 실현을 위하여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할 때입니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이든 언택트 시대이든 우리는 시대를 주도하며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 여러분들을 축복합니다. 샬롬.